합죽 할머니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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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죽 할머니의 삶
  • 관리자
  • 승인 2007.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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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손길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음직한, 돈암동의 고지대에 들어선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15층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는,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청명한 하늘 아래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현관, 방, 욕실, 주방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12평짜리 아파트에는 윤계화(76세) 할머니와 손녀딸 영임(16세)이가 살고 있다.

“쥐뿔도 없는 우리가 아파트에 사는 게 이상하게 보이죠. 여기에 살기 전에 정릉에서 셋방살이를 했는데, 그 곳이 철거가 되면서 주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운 좋게 이 아파트를 임대 받게 되었어요. 예전 살던 집은 웬 쥐와 벌레들이 그리도 많은지, 거기에 비하면 이 집은 천국이나 다름 없지요.”

윤계화 할머니는 말씀 도중에 연신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화병으로 인해 가슴에 몽우리가 생겨 호흡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숨을 고르느라 말을 잇지 못하면 옆에서 손장난을 하고 있던 손녀딸 영임이가 더듬거리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하, 할머니 가슴이 꽈, 꽉 막혔대요.” “쥐, 쥐가 되게 마, 많았어요.”

영임이는 3살 때 어머니를 잃었다. 할머니는 옛 일을 돌이키고 싶지 않은지, 그저 며느리가 속병을 앓다 갔다는 얘기 밖에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눈을 멀리 두셨지만 조금씩 이슬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젊어서 홀로 되신 할머니는 당시 고향인 전남 장성에서 평생 농사를 짓다가, 아들 오광렬(53세) 씨와 어린 영임이를 거두기 위해 낯선 서울 땅을 밟았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창살 없는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만 살아온 터라 교통 지리도 모르거니와 아는 사람도 없어 집 밖을 나서기가 두려웠다. 게다가 영임이가 어려서부터 병치레를 많이 해 걱정이 끊일 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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