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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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의 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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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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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말기획/ 교학강좌16

육육법의 경우 전후의 지분은 단순히 의존하여 발생하기만 하고 오온의 경우 의존관계는 생락된 채 함께 올라가는 데에만 두드러진 발생법 상의 특징을 보입니다.

그러나 12연기에 오면 뒤의 것은 앞의 것에 의존도 해야 되고 의존만 할 것이 아니라 함께 밑에서 위로 올라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프라티이트야 쌈우뜨파다(pratitya-samutpada)는 순수하게 우리말로 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기대어 함께 올라감’이라고 해석될 거예요. 연생(緣生)은 ‘기대어 올라감’, 집(集)은 ‘함께 올라감’, 연기(緣起)는 ‘기대어 함께 올라감’, 이러한 발생과정에 있어서 점점 무언가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12연기를 다룰 때 두 번째 주제로 등장하는 연기의 발생양식에 대한 접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연기의 지분은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열두 가지가 있어요. 이러한 열두 가지의 뜻이 뭐냐, 우선 처음의 무명부터 살펴보면 됩니다.

무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아주 쉽게 풀이해본 것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세요.

“무명은 진리에 대한 근본적인 무지(無知)이다. 사실에 대한 근본적인 착각일 수도 있고 일시적 형체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꿈 속에서 제왕의 자리에 오른 자는 그것이 꿈 속의 일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리하여 결국은 흩어질 것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착각한 채 크게 기뻐하며 집착한다. 그와 같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르는 물처럼 언제나 변하며 흩어지고 마는 것인데도 그 진리를 모르는 자는 어떤 존재가 나타내는 일시적인 모습에 빠지게 된다. 즉, 사실은 영원하지 않음에도 영원하다고 착각한 채 강하게 집착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명이다.”

명이라는 구조를 상정해 볼 때 거의 물과 같습니다. 물은 형체를 떠난 적이 없지만 어떤 형체도 고정된 것이 없습니다. 컵에 담기면 컵의 형태, 병에 담기면 병의 형태, 물은 형체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형체를 떠나지도 못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물이에요.

부처님께서는 물을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어떤 형체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형체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물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명(明)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명은 어떤 형체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형체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늘 무엇인가 변화가 야기되는 형체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변화라는 것은 어느 순간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 때도 있어요. 컵에 가만히 담겨 있는 물을 보고 물은 언제나 이 모습대로 있어야 한다고 집착을 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세상의 모든 것은 흐르는 물처럼 언제나 변화하는데 잠시 머무는 그 형체를 보고 그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강하게 집착하는 것, 그렇게 집착된 대상, 집착과 대상이 따로 있겠습니까?

집착은 바로 대상에 대한 집착이니 그걸 무명이라고 부른다면 여러분은 잘 본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존의 바탕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무명이 있게 되면 무명을 연(緣)하여 행(行)이 발생하되, 그 무명과 함께 떠오른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무명을 연하여 행이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연하여 있다’의 속뜻이 바로 프라티이뜨야 우트파다(pratitya-utpada, 연하여 함께 올라간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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