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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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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법석2 / 원효(元曉) 성사(聖師)

덧없이 지나간 세월이 그 몇 생이었는가

원효 성사는(617~686) 한국 불교사상 이견이 없는 가장 위대한 스승이며, 7세기 동아시아의 스승이기도 했다. 또한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사상계를 오늘날까지 주도하고 있는 동방의 찬란한 빛이며 인도의 용수(龍樹) 보살, 중국의 달마 대사와 함께 성자로 자리매김한 세계 불교사상 손꼽히는 위대한 수행자이기도 했다.

원효 성사는 진평왕 39년(617년) 경상북도 압량면(현재의 경산군)에서 출생하였다. 성사의 출생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극적인 시기에 해당한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통일 전쟁을 앞둔 격동기였던 것이다. 출생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연상시킬 만큼 극적이다. 『삼국유사』 권4 「원효불기(元曉不羈)」에는 성사의 어머니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급하게 해산기를 느끼고 남편의 옷을 사라수(裟羅樹) 가지에 걸고 그 아래에서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룸비니 동산 보리수 아래에서의 탄생과 사라수 아래에서의 탄생, 더구나 사라수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나무이다. 성사는 648년 황룡사(黃龍寺)에서 출가하였다. 그러나 『송고승전』 『삼국유사』 등에 실려있는 출가 시기가 모두 일치하지는 않는다. 출가 전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출가 후 널리 알려진 대로 의상 대사와 함께 중국 유학 길에 올랐다가 깨달은 바 있어 홀연 귀국한다. “삼계가 오직 한마음이요, 만법이 오직 마음에 달려 있도다〔三界唯心 萬法唯識〕. 마음 밖에 법이 없으니 어찌 따로 구하겠는가〔心外無法故用別求〕.” 귀국 길에 성사가 남긴 게송은 또한 그대로 커다란 깨달음이다.

성사는 요석 공주와의 사이에서 민족사에 빛나는 또 한 분의 영웅 설총을 낳았다. 그 후 귀족과 정권을 위한 불교를 민중들에게 돌려주는 보살의 삶으로 일관했다. 성사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은 오늘날까지도 불교계와 사상계 전반을 주도하는 화쟁(和諍)으로 자리잡고 있다. 성사의 무애(無碍)는 출가와 재가를 두루 아우르는 등불로 빛나고 있다. 7세기 동아시아 사상계를 이끌고 빛낸 성사의 가르침은 1,400여 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새로운 천년에도 여전히 인류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성사는 신라의 통일 후 민중과 함께 호흡하다가 686년 열반에 들었다. 그러나 성사의 성불론(成佛論)을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선정에 들었다가 다시 환생하였다고도 한다. 민족사의 격동기에 이름 그대로 한국 불교의 새벽을, 한국 정신사의 새벽을 연 분이 원효 성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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