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시대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 시대의 정신, 학문과 지식을 끌어안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교설은 근세에 혁명적으로 발달한 자연과학의 지식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천주교는 중세 때 과학자들을 화형시키면서까지 저항하던 자연과학의 지식을 이제 받아들이고 옛날의 과오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는 이런 노력이 없다.
1990년 1월호에 「불교와 자연과학」라는 제목으로 불교와 자연과학의 조화를 강조한 바 있다. 불교의 교리는 오랫동안 다듬어져 온 것이지만 현재 설명하고 있는 방법은 오래된 옷을 입고 있다. 불교의 기본교리는 변함이 없더라도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새로운 옷을 입고 사람에게 나타나야 한다. 양복 입은 집단에 두루마기가 어울리지 않듯이, 현대언어에 맞는 법설이라야 사람의 귀를 뚫을 수 있다. 특히 불교의 기본 교리인 양 받아들이고 있는 인연과보와 윤회설에 재해석의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오늘은 윤회설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자연과학은 생명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를 보고자 한다.
고대인도사상
고대인도사상은 기원전 3천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 때의 문화를 베다문화라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여러 요소, 예로 눈은 태양으로, 생기는 바람 등 자연으로 분산되고, 영은 불의 신 아그니가 저승으로 데리고 간다. 여기서 새로운 몸을 받는다. 생명의 힘은 물이고 달은 물을 담는 용기이며 달이 기우는 것은 물의 영향이라고 보았다. 비(물)가 내리면 식물이 소생하거나, 아니면 죽는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다.
수분은 식물과 함께 섭취되어 영양이 되고 정자로써 수태되어 새로운 생명이 되고 화장하면 다시 천상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물의 순환사상이 생명의 순환사상으로 연결되고 윤회사상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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