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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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승인 2007.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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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스님, 집에 불 들어갑니다….”

하화(下火) 신호와 함께 연잎으로 장엄된 다비대에는 화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큰스님의 법신이 마침내 윤회의 사바세계를 벗는 순간이었다. 적멸(寂滅)이라 했던가. 입추의 여지없이 금정산 범어사 뒷편의 다비장을 메운 불자들 사이에 서 있던 지혜월 보살은 끝내 오열을 참을 수가 없었다.

덧없다는 말만으로 삶의 모든 것을 갈무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큰스님의 법체가 영단(靈壇)을 밝히기 시작하는 그 순간만큼은 이미 그녀의 하늘과 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모양 없는 한 점 바람에 맥없이 스러지는 촛불. 큰스님이 이승의 옷을 벗고 계시는 동안, 다비대를 둘러싼 수백여 개의 만장이 더불어 타오르고 있는 그 동안 그녀는 망연히 텅 빈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

독실한 불자였던 부친을 따라 그녀가 절에 다녔던 것도 60여 년이 훨씬 넘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그녀에게 불교는 절실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찾곤 하시던 절은 그저 ‘흙으로 빚은 우상’에 절을 하고 정갈하게 잘 차려진 밥을 먹는 곳으로만 각인되었을 뿐이었다. 더욱이 사춘기 때에는 미션 스쿨에 다니면서 기독교적 의례와 그 사상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들게 돼 불교는 늘 막연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색칠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지혜월이 결혼하고 난 뒤에도 절을 꾸준히 찾게 된 것은 불교의 교리나 가르침에 대한 갈증보다는 절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결혼 이후 딸 넷을 낳은 뒤, 늦게 얻게 된 아들이 그녀의 불심을 재촉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아들이 조금만 아파도 불안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던 그녀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렸을 때 아버님을 따라 무심히 찾던 절이었다. 절을 하는 곳이라 절이라고 부른다던가.

법당 마루에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고 나면 후련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들고는 했다. 그러나 왜 절에서는 절을 하는 것인지, 부처님은 무슨 가르침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인지 의문은 좀체 가시지 않았다. 책을 읽거나 스님들의 말씀을 들어도 좀체 가슴에 다가오지 않는 의문이었다.

오죽했으면 신심이 깊은 친구에게 “부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맹목적으로 절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어차피 나는 부처님께 등을 돌릴 수 없는 인연인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모르니 답답해.” 하고 하소연까지 했을까. 그 때 그 신심 깊은 친구의 한 마디 대꾸가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게 될 줄은 그녀도 몰랐고 스님께 귀의케 한 그 친구도 몰랐다.

“우리가 좀 더 자주 만날 걸 그랬구나. 요즘 대각사에서 원력을 크게 세우신 스님이 법문을 하셔. 이번 법회에 함께 가자.”

병원의 바쁜 일과 중에 간신히 틈을 낸 지혜월은 법상에서 차분히, 그러나 힘있는 목소리로 법문을 하시는 스님을 뵙는 순간 등에처럼 가슴 속을 괴롭히던 불안감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먹장구름을 걷어낸 햇빛을 볼 때처럼 환희심이 일어났다.

“오늘 내가 행하고 마음먹는 모든 것들은 내일의 나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에겐 무한한 힘과 능력이 있습니다. 그걸 쓸 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께 매달려 기도를 하면서도 돌아서기만 하면 언행 일치가 안 되는 불자들이 많습니다.”

스님의 법문은 단숨에 지혜월의 마음을 가리고 있던 무명의 그림자를 걷어내기에 충분했다. 그토록 어렵고 막연히 느껴지던 불교 아니었던가. 그러나 스님은 초등학생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쉬운 말로 불자의 도리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계셨다. 문제는 앎이 아니라 그 실천에 있었다. 하지만 알지도 못한 실천은 그것대로 무명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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