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대중 속에 심어주신 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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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을 대중 속에 심어주신 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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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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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덕 큰스님의 생애와 사상

큰스님과의 만남과 인연에 대해서 회고해 주십시오.

스님과 나와의 인연은 1956년 9월달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1956년은 잘 아시다시피 국가적으로는 국민소득이 50불이었던 빈곤 상태를 헤매면서 전쟁은 끝났지만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르는 그런 불안 속에 살고 있었지요.

또 우리 불교 내부에서는 정화운동이 일단락 돼서 비구 승단이 종단을 지배하고 있던 그런 시대입니다. 사상적으로도 세상이 혼미하였고 경제·사회적으로도 아주 어렵게 지내던 그 때 국민들이 종교에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헤매고 있을 때 광덕 스님이 대각사에서 ‘대각회’라는 포교 단체를 조직했습니다.

그 때 대각사 주지는 소천 스님이셨는데 광덕 스님께서 약관 30세의 나이에 포교 활동을 개시하셨습니다. 나는 당시 27세의 청년으로 동참해서 총무를 맡고 같이 대각회를 발전시켰습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불교는 기복 신앙의 도구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때 불교야말로 현대 인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영원한 등불이라는 것을 세상에 외치신 것입니다.

국내의 저명한 학자나 지도층에 계신 분들을 매주 초청해서 대각사 법당에서 대법회를 열었습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일간지에도 많이 보도되는 등 57, 8년도 당시엔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금 생각해 볼 때 30세의 나이로 남이 해보지도 못한 대중 포교 운동을 ‘각사상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개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보통 사람은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스럽게 스님이 백용성 스님의 문중에 계셨지요. 백용성 스님께서 불교가 하도 타락해서 세상 사람들이 기복 신앙밖에 하지 않으니까 이건 안 되겠다 해서 대각교 운동을 시작하셨는데 그 본부가 대각사입니다.

그 사상을 전개하시려고 용성 큰스님께서 여러 가지 경전을 번역하고 남들이 불교를 서양 음악적으로 찬양하게 되면 예수교 냄새가 난다고 싫어할 적에 풍금을 치면서 불교 운동을 전개하셨던 분이 바로 용성 큰스님입니다.

불행히도 왜정 시대였기 때문에 그 운동이 크게 발전을 못했지만 그 뜻을 이어받아 손상좌 되시는 광덕 스님께서 대각교운동을 전개하셨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때 마침 좋은 인연이 되어서 『금강경』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스님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세상에 저렇게 깨끗한 얼굴도 있는가’하고 깜짝 놀라서 내가 홀딱 반해가지고 그 때부터 불교 운동에 투신하게 되었고, 43년 동안을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모시고 지냈습니다.

삶과 사상을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불교라고 하면, 현실사회를 떠나 산중으로 들어가야 되고, 신분도 승려라야 되지 일반 신도는 불교 수행을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광덕 스님은 옛날부터 내려오던 한계를 타파하는 혁명적인 사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또한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면 육바라밀의 하나로서 그저 일반적인 윤리 덕목 중의 하나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을 때, 그게 아니라는 거지요.

반야바라밀이야말로 부처님 신앙이고, 반야바라밀이 불자들의 신앙의 바탕이 되어야 된다. 반야바라밀이라는 게 딴 것이 아니라 바로 참생명으로 회귀하는 것임을 강조하셨지요.

참생명의 회귀는 본래부터 부처님 생명이다. 우리가 지금은 중생인데 앞으로 노력해서 부처님이 된다는 것이 잘못된 생각이다, 세상 사람들은 ‘나는 지금은 중생인데, 앞으로 노력을 잘하면 부처님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반야사상에서 생각하면 본래 중생이 없거든요. 우리는 스스로 깨치지는 못했을 망정 본래부터 부처지요. 본래부터 부처니까 반야바라밀이라는 신앙의 바탕을 통해서 내가 부처인 듯이 살면 된다는 거예요.

새삼스럽게 부처 되는 게 아니니까, 보현행원을 실천한다는 것이 딴 것이 아니라, 내가 본래 부처니까 부처처럼 살면 될 게 아니냐. 그래서 반야바라밀이 신앙의 바탕에 깔려 있어서 일상생활 모두를 보현행원으로 살도록 그렇게 강조하신 분이 광덕 스님입니다.

그 어른이 말씀하신 불교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한 지역에 들어가서 하는 불교수행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신분을 바꿔야 수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재가자 입장 그대로 그 자리에서 또 보현행원을 실천해 나가라. 보현행원의 도량은 가정이고, 직장이고, 사회라고 하셨지요.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근세의 불교운동을 재가화시켜 주신 큰 별이십니다.

그 어른은 적어도 부처님 법에 귀의한 사람이라면 보현행원을 실천해야 되는데, 보현행원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바로 전법도생, 법을 전해서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라고 하셨지요. 선방에 들어가서 수행해서 견성의 경지에 간다는 것을 강조하신 게 아니라, 「보현행원품」의 보현행원으로 보리(菩提) 이루리를 강조했습니다. 그 어른의 모토는 항상 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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