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일꾼으로 부처님의 논밭을 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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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일꾼으로 부처님의 논밭을 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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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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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문화의 새로운 유형 만들기, 농선(農禪)도량 봉화 관음사

경북 봉화군 상운면 하눌 2리. 농선도량 관음사에는 요즈음 봄기운이 물씬물씬 풍겨오고 있다. 농촌이 다 그렇지만 이곳 역시 젊은 사람이라고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가까이에 있 던 하눌초등학교가 문을 닫은 것도 학교에 다닐 어린이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거의가 노인 들이 집을 지키고 있고, 하루에 두 번 버스가 들어오는 벽촌 중의 벽촌이다. 50년 전에 이 마을에 지어졌던 관음사가 거의 비어 있다시피 한 것도 근 10년이 된다. 그런데 농촌포교에 특별한 원을 세운 농선 최병호(33세) 법사가 이 곳에 주지소임을 맡아 온 것이다.

"관음사는 제 외조부님이신 동명 노화상님께서 1949년에 창건하시어 불교포교와 대중교화 로 정진하시던 유서 깊은 도량입니다. 스님께서는 마을에 있는 어린이들을 모아 놓고 어린 이법회를 여셨고 한글을 모르는 노인들을 위한 한글학당도 여셨어요. 저 건너 마을에 제가 살았고 자주 이 절 마당에서 뛰놀았지요. 제가 농대에 진학하게 된 것도 농촌을 살리고 싶 어서였습니다. 노동의 대가에 비해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농민들이 가슴아팠습니다. 고등학 교 때 읽은 소설 상록수도 제겐 많은 영향을 주었지요."

조숙했던 때문인지 일찍이 인생무상을 느낀 최병호 법사는 한 때 죽음을 생각하며 약을 먹기도 했다. 지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만 봐도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한때는 무상을 여실히 보자는 생각에 책가방 속에 목탁을 넣고 다니며 상가집에 가 죽은 시신의 염습도 하고 영가를 위해 염불을 해 주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그의 별 명은 '중'이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농대(부산 동아대학교 농대 농업미생물학과)에 입학한 그는 세 번이나 휴학을 해야만 했다. 농촌의 현실과 너무나 먼 이론 중심의 교육에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혼자 토굴에 기거하며 1년 간 농사를 짓기도 하고, 축산을 배우기 위해 목장에서 300마리가 넘는 소를 치며 소똥을 받아내고 젖을 짜고 소의 출산과 인공수정 기술을 배우기도 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중노동이었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수행이 되고 기쁨이 되었다. 염 불을 하며 논밭을 갈다보면 그대로 염불과 일이 하나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즐거 운 체험은 소를 키우면서 소에게 회심곡과 발원문을 창으로 들려주니 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하는 것을 본 것이었다. '농심즉불심(農心卽佛心)'을 온 몸으로 체득했다.

"똑같은 일을 하는 데도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사람과 짜증스런 마음으로 하는 사람은 그 결과가 많이 다릅니다.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수행으로 알고 하다보면 일도 훨씬 즐 겁고 결과도 좋을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보살행입니다. 농사를 통해 얻어진 곡물은 중생들의 굶주림을 달래주지요. 암에 게 이익을 주기 위해 정성을 다하다 보면 결과적으로 그 공덕은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에요. 수행과 일은 둘이 아닙니다. 내면의 수행이 잘 되면 일도 잘 되고 즐겁습니다. 이렇게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지요. 농사를 짓고 계신 분들에게도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이 바로 보살행임을 일깨워드리고, 농작물을 심을 때도 광명진언을 외우면서 하라고 합니다. 진언을 외우는 사람도 밝아질 뿐만 아니라 광명진언을 듣는 곡물도 훨씬 잘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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