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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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의 성숙
  • 관리자
  • 승인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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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그늘/효봉(曉峰) 스님

위산 영우( 山靈祐)라고 하는 중국의 선사가 있다. 백장 회해(百丈懷海)의 제자이다. 백장 은 선원(禪院)의 생활규칙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다. 백장이 선원의 생활규칙을 만들기까지 선승(禪僧)들은 율사(律寺)의 별원(別院)에서 기거했으며 독자적으로 선사(禪寺)를 갖고 있 지 않았다.

말하자면 율사에 얹혀서 사는 꼴이었다. 그러므로 독자적인 생활규칙은 물론 사원(寺院)의 지위도 특별히 주어진 것이 없고 선승에게 죄과(罪過)가 있어도 그를 다스리는 규범이 없었 다.

<전등록(傳燈錄 6권)> 백장회해전에 보면 백장이 선문의식(禪門儀式)을 지었다 했는데 백장 고청규(百丈古淸規) 또는 백장총림청규(百丈叢林淸規)가 그것이다. '총림청규'라고 하는 말 이 시사하듯이 백장의 청규는 선종(禪宗)을 하나의 교단으로 독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 그 청규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백장이후, 백장의 청규를 이어받아서 만들어진 선원 청규(禪苑淸規) 등에서 그 중요한 내용을 알 수가 있다.

<전등록>에 의하면 이 같은 백장의 법을 이은 선사(禪師)는 30인이나 되고 그 중 13인의 기록이 보이는데 그 필두(筆頭)에 위산 영우가 있다. 이것은 위산 영우가 백장 회해의 법을 이은 문인(門人)중, 제 1인자임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선종(禪宗)을 독립시킨 백장의 교 단을 이어받아 발전시킨 대표자로 위산 영우는 손꼽히고 있으며, 그는 그의 제자 앙산 혜적 (仰山慧寂)과 함께 위앙종( 仰宗)이라고 하는 선종 오가(五家) 중 최초의 종파를 세웠다.

위산 영우는 15세 때, 생가(生家)가 있는 향리(鄕里)의 율사(律師)인 건선사(建善寺)에서 출 가하여 법상 율사(法常律師)에게서 머리를 깎았다. 영우는 그 때 받은 승명(僧名)이다.

19세(혹은 20세) 때, 항주(抗州)의 용흥사(龍興寺)에 가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그는 대소 승(大小乘)의 경전과 율장(律藏)을 배웠다. 조당집(祖堂集)은 이 때, 영우가 "소승은 대충 보고 대성은 정밀하게 읽었다." 고 함으로써 영우가 대승에 대해서 특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23세 때의 어느 날, 영우는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 완전하고 심오하나 끝내는 내 마음이 안정 할 곳이 아니다."라고 탄식하고 교학(敎學)을 버렸다. 교학을 버린 그는 천태산 (天台山)으로 지자 대사(智者大師)의 유적을 찾아 나섰다.

그 도중에서 한 은인(隱人)을 만났는데 그가 영우의 손을 잡고 가가대소(呵呵大笑)하면서 마흔 말이 "그대의 여생(餘生)은 인연을 따라 나이가 들수록 훌륭하게 될 것이다. 륵담( 潭)을 만나면 머물고 위산( 山)을 만나면 그 곳에서 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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