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이른 가을 날 잉그리드의 소개로 서운사 식구가 한 사람 더 늘었다. 방문 첫날부 터 절 떠나기를 싫어하는 눈치던 마코는 그날 이후 절에서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사다 나르 며 소화기를 설치하고 전화선을 새로 가설하는 등 큰일 작은 일들을 시작했다. 워낙 큰집이 라 손볼데가 많아서 미처 손을 쓰지 못했던 곳에 마코는 그의 약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오래된 전기줄과 전 등을 새것으로 바꾸고 깨진 유리와 창틀을 갈아 끼웠다. 해마다 눈 치 우는 사람을 따로 불러야 했는데 올해는 마코가 그 일을 자진했다. 가로수가 넘어질 정도로 폭설이 쏟아지던 지난 주말에는 눈 치우는 차를 몰고화서 말끔히 정리했다.
법회 날에도 마코는 너무나 이쁘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끝까지 따라서 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음식이 나와도 마다하지 않고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도서관에서 빌렸다 면서 한국어 테이프를 출퇴근 길에 듣고 다니면서 우리끼리 한국말을 주고받을 때면 그 큰 눈을 꿈벅거리면서 귀를 기울이고 듣는다. 그러다가 어쩌다 한두 마디씩 알아들으면 영락없 이 이쁜 사내아이의 얼굴을 하고는 내게 확인한다.
가끔 차를 마시면서 불교 교리에 대해 한두 마디 설명해주면 마치 인도의 명상수행자와도 같은 선량한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환희심을 낸다. 그리고 가끔씩 내주는 숙제 또한 인터넷을 통 해서 어김없이 해온다. 일전에는 같은 회사동료 가둔데 불교신도 한 사람을 만났다고 반가 워했다.
그런데 한 달쯤 전부터인가 서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아내와의 불화로 부부상담 을 일년간이나 받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는 절에 올 때마다 내가 가라고 할 때까지 좀처럼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하는 모습을 보면 천상 출가수행자의 생 활이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아내와의 관계가 그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다. 혹시 나 하는 마음에 그 이후부터는 일찍일찍 집으로 돌려보내고 절에도 일주일에 한 번만 오도 록 했다.
왜냐하면 아직 그들의 정서적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언어 장벽까지 겹쳐 있기 때문 에 선뜻 개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해서 절에 나가서 부부 사이가 더 멀어졌 다는 말이라도 듣는 날이면 내 입장이 무척이나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절에 서 아예 살라고 해도 할 사람 같았다.
마코의 부부 관계를 알고나서 한두 주일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있던 중 하루는 잉그리한테서 전화가 왔다. 잉그리드는 카톨릭 신부님을 예로 들면서 나에게 은근히 마코를 도와줄 것을 권했다. 아울러서 그는 내가 염려하고 있던 부분에 대하서도 어차피 아내와의 불화로 바깥 을 나돌면서 다른 여자를 만나거나 술집이나 도박장을 찾는 것보다는 절일을 돕는 편이 아 내입장에서도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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