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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제자 이야기] 가장 평화로왔던 수보리 존자
안동봉정사영산회괘불도. 보물 제1642호, 1710, 비단에 채색, 713.5×575㎝, 중앙의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8보살과 10대 제자가 둘러싸고 있다. 사진제공_안동 봉정사

|    손오공 이름을 지어주다

중국 고전 『서유기』를 읽다가 새삼스레 확인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천방지축 원숭이 한 마리가 그들 종족의 왕이 되어 온갖 환락을 누리다가 문득 인생무상을 뼈저리게 느끼고 도를 찾아 나섭니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사대륙을 헤매다가 만난 이가 바로 수보리 존자입니다.

『서유기』가 불교 세계만을 바탕으로 펼쳐진 소설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그러니 수보리 존자가 소설 첫머리에 등장했다고 해서 당장 이 원숭이 왕에게 『금강경』을 설해줄 리는 만무입니다. 수보리 존자는 그 대신 그에게 이름을 붙여줍니다.

성은 손이요, 이름은 오공이라 -.

어릴 때 읽으면서는 그저 지나친 대목인데, 모든 것은 자성이 비었다는 공空의 이치를 깨달으라는 뜻에서 오공悟空이라 불리게 됐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이름을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존자가 지어줬다는 사실이 소설임에도 흥미롭습니다. 

진리를 구하러 천축으로 가는 과정이 펼쳐질 것임을 빤히 알면서도 어쩌면 손오공은 그 와중에 공空이라는 화두를 받은 것이 아닐는지요. 공이란 무엇이냐, 이런 숙제를 안고서 손오공은 그걸 풀기 위해 온몸으로 날뜁니다. 그래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중국 사람들에게 수보리 존자는 ‘공’의 최고 권위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도 같습니다. 우리에게 “수보리!” 하면 『금강경』이며 이 경의 주제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잘 압니다. 이 경전에서 부처님은 수많은 제자들을 다 제쳐 두고 수보리를 자꾸 부르시는데, 그 까닭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머니 마야부인을 교화하던 사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싯다르타를 낳고 이레 만에 세상을 떠난 마야부인은 도리천에 올라갔고, 훗날 붓다가 되신 아드님은 어머니에게 법을 들려주기 위해 천상으로 올라갑니다. 이때 지상에서는 부처님 자취가 끊기고 말았으니 적적하기 이를 데가 없었지요. 석 달의 법문을 마치고 다시 땅으로 내려올 때 사람들은 승속을 가리지 않고 가장 먼저 부처님을 맞이하려 안달이 났습니다. 어느 숲속에서 옷을 깁고 있던 수보리 역시 스승님을 맞이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문득 다시 주저앉습니다.

‘과연 내가 지금 보려고 하는 것이 진짜 여래인가? 허상뿐인 몸이 아닐까? 우리는 진짜 여래를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그는 덤덤하게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그 일이란 바느질입니다. 그러니 매일 하던 일을 그냥 하는 것이 부처님을 제대로 맞이하는 것임을 수보리는 행동으로 보였습니다. 부처님은 이런 수보리의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그가 옳다고 인정하십니다.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 저 해탈문이 부처를 맞는 이치이다. 만일 부처를 맞아 절을 하려거든 다가올 미래와 지나간 과거 모두가 텅 빈 법이라 관찰하여라.”(『증일아함경』 제28권)

부처님은 수보리에 대해서 『증일아함경』 제3권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공의 경지에 즐겨 들고, 공의 이치를 잘 헤아려 사람들에게 차근차근 일러주는 이가 수보리 비구요, 언제나 텅 비고 고요하고 미묘한 덕을 쌓는 업에 마음을 두고 있는 이도 수보리 비구이다.”

수보리가 지닌 이런 성품이 훗날 『금강경』에서 저 유명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즉견여래”로 응축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래를 제대로 보려면 무엇을 봐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구절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이

수보리 존자는 이렇게 공의 이치를 꿰뚫은 분입니다. 그저 머리로만 이해했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그 매일의 몸가짐도 공의 경지에서 노니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공제일 수보리 보다는 소소한 일상의 수보리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좀 더 와 닿습니다. 초기경전인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에서 부처님께서는 수보리를 이렇게 찬탄합니다.

“비구들이여, 내 제자비구들 가운데 수부티는 평화롭게 사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다.”

“비구들이여, 내 제자비구들 가운데 수부티는 다른 이에게 보시받을 가치가 있는 이들 가운데 으뜸이다.”

이 가운데 ‘평화롭게 산다’는 뜻을 풀어보면 ‘다투지 않는다, 다른 이와의 관계 속에서도 마음이 편안하다’와 뜻이 통합니다. 일생을 살면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살짝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도 있을 법한데, 수보리 존자는 남과 다투지 않을뿐더러 마음에 맺힌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가 부처님 제자 가운데서도 으뜸이라고 하니, 수보리 존자의 경지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요?

다행스럽게도 『맛지마 니까야』의 「아라나비방가 숫따」에서는 이런 경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아라나비방가’란 말은 평화에 대한 분석 또는 다툼 없음(無諍)에 대한 분석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비구들을 불러 모으신 뒤에 ‘다투지 않음’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하십니다. 

다투지 않으려면 가장 먼저 양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십니다. 쾌락과 고통 등과 같은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치우침을 떠나서 여래는 중도를 바르고 완벽하게 깨달았으며 그로 인해 눈이 생기고 앎이 생겨 열반으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둘째, 다투지 않으려면 칭찬해야 할 것과 비난해야 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때 칭찬해야 할 것은 쾌락과 고통에 치우치지 않는 행위요, 비난해야 할 것은 이 둘에 치우치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칭찬해야 할 것과 비난해야 할 것을 정확하게 알고, 오로지 진리를 설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다투지 않으려면 즐거움에 대한 정의를 알아야 합니다. 단, 즐거움에 대한 정의를 정확하게 알고 나서 스스로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이 좇는 즐거움이란 허망하기 짝이 없는 쾌락이지만, 수행자들은 선정의 경지를 즐거움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다투지 않으려면, 비밀스런 이야기든 공개적인 비판이든 유익하지 않은 말은 하지 말고, 유익한 말이더라도 적절한 때에 말해야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사람들이 비밀스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그른 말과 옳은 말입니다. 비밀스런 이야기가 그른 말이건 옳은 말이건 유익하지 않은 것은 분쟁을 야기하고, 옳으면서 유익한 말은 평화를 가져옵니다. 공개적으로 비판할 때도 그 이야기가 그른 말이건 옳은 말이건 유익하지 않으면 분쟁을 야기하며, 옳으면서 유익한 말은 평화를 가져온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섯째, 다투지 않으려면 차분하게 말해야 하며, 조급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십니다. 조급하게 말하면 몸과 마음이 피로하고 흥분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말소리가 분명하지 않고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합니다. 

여섯째, 다투지 않으려면 지방어를 고집하지 말아야 하며, 보편어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십니다. 한 가지 사물을 두고 각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저 이름이 다를 뿐인데 ‘너의 말은 틀렸다. 내 말이 옳다’라고 고집하는 것은 그릇된 행동입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 사항을 부처님은 진지하고도 간곡하게 당부하십니다. 누군가 부처님의 이 당부를 잘 따르며 살아간다면 그에게는 다툼이 일어날 수가 없을 듯합니다. 이 여섯 가지 사항을 잘 지키면 괴롭지 않고 불안하지 않고 마음이 어지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여섯 가지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괴롭고 불안하고 마음이 어지럽다고 거듭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선남자 수보리야말로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다툼의 원인을 부처님 방식으로 분석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적어도 수보리 존자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임을 알게 되어 행복합니다. 그런 분이신 만큼 이른 아침 수보리 존자가 탁발하러 마을로 내려오면 우리 집 앞에 멈춰서주시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에, 내 집에, 우리 사회에 분쟁이 멈추고 평화가 깃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계속)              

                                                               

이미령
불광불교대학 전임교수이며 불교칼럼리스트이다. 동국대 역경위원을 지냈다. 현재 YTN라디오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과 BBS 불교방송에서 ‘경전의 숲을 거닐다’를 진행하고 있다. 또 불교서적읽기 모임인 ‘붓다와 떠나는 책 여행’을 이끌고 있다. 저서로는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간경 수행 입문』, 『붓다 한 말씀』,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등이 있다.

이미령  bulkwang_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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