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리만 다친 까마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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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만 다친 까마귀
  • 관리자
  • 승인 2007.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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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불교강좌

많은 경전과 법문을 통해서 불교를 알게 되고 또 많은 것을 얻어 슬기로운 삶의 지혜로 삼는다. 그러나 청소년들에게는 한문 경전과 대승경전이 매우 난삽하고 부담이 되어 그 진의를 깨닫기가 어렵다. 이에, 이른바 초기경전이라 일컫는 아함경에 있는 짤막한 세존의 법문을 통해 현실과 현대인의 갈등을 관조해 보고자 한다. 문답 형식의 게송 가운데 번개처럼 스치는 인정과 지혜가 있다.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드리드라쿠탄산에 계시던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아침 일찍, 세존께서 라자가하로 밥을 빌러 가시는 것을 본 마왕 파피야스가 「내 저 고타마의 마음을 어지럽혀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수레꾼으로 변신하고 세존께서 가시는 길에서 어정거리며 두리번 두리번 소를 찿는 척하고 있었습니다.

 손에 채찍을 들고 다 떨어진 옷에 머리는 헝클어졌고 손과 다리는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이윽고 세존께서 가까이 가시자, 『고타마시여, 내 소를 못 보셨는지요?』하고 여쭈었습니다. 세존께서는 그가 마왕임을 곧 알아차리고, 『파피야스, 소는 무슨소— 소는 찿아 무엇하려느냐?』고 꾸짖으셨습니다.

 세존께서 이미 자신의 본색을 알고 계시다는 것을 안 마왕은 좀 찔끔했지만 그만한 일로 물러설 마왕이 아니었습니다.

『눈을 통해 느끼는 것, 그것이 곧 내가 찿는 소요, 그 뿐 아니라 귀 · 코 · 혀 · 몸 뜻으로 느끼는 것마다 모두 내가 타는 소요.』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쭈었습니다.

『고타마시여, 소를 못보시었오?』

『파피야스여, 눈을 통해 느끼는 것이 있기에 그대가 파고들 틈이 있고, 귀 · 코 · 혀 · 몸 · 뜻을 통해 느끼는 것이 있기에 그대가 타겠다는것, 그러나 나는 이미 육근(六根)과 그 대상에서 떠나 그대는 이르지 못할 저 언덕에 이르렀다. 그대가 찿는 소는 내게 없다. 또 내 가르침을 받는 저들에게도 소는 이미 없다.』고 말씀하자 마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대들었다.

『만약「나」는 영원 것, 저것은 「나의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한 그대는 아직 내게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고타마시여, 자 어찌 하겠오.』

 세존께서 조용히 이르시었습니다.

『「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저것은「나의 것」이라는 생각도 없다. 그러므로 파피야스여, 잘 듣거라. 그대는 스스로 험한 곳에 떨어지리라.』

 더 할말을 찿지 못한 마왕은 버럭 화를 내며 외쳤다.

『그대 말대로 도(道)를 깨달아 열반에 이르렀거든 그대 혼자서나 가시오. 어찌 번거로히 남에게 까지 가르치시오.』

 세존께서는 여전히 조용히 말씀하시었습니다.

『마에서 떠나려는 사람이라면 저 언덕에 이르는 길을 물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나는 평등히 설해 주리라. 티끌만한 흐림도 없는 영원한 진실을, 늘 방일(放逸)하지 않고 정진하면 그때 그는 마에서 떠나 영원히 자재하리라.』

 그제서야 마왕은 더 버틸 힘이 없음을 알고 풀이 죽어 괴로운듯이 말했습니다.

『고기덩이처럼 생긴 돌을 보고 굶주린 까마귀 날아와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을 생각하며 주린 배를 채우려다가 마침내 그 맛은 보지도 못하고 부리만 다치고 허공을 날아가네.』

 끈질기게 세존을 훼방했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한 자신의 몰골을 생각하며 말을 이었습니다.

  나는 마치 그 까마귀같고

  고타마는 그 돌과 같고

  부끄러움과 아픔 이기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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