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과 노은사(老恩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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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과 노은사(老恩師)
  • 관리자
  • 승인 2007.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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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

  나는 지금 창 너머로 뜨락을 바라보고 있다. 햇살이 잔디 위에 듬뿍 괴여 있다. 대추나무 가지에 참새가 여러 마리 와  앉는다. 작은 나래를 펼치고 지저귀고, 윗가지에서 아랫가지로 아랫가지에서 윗가지로 옮겨 않기도 한다. 그 정겨운 모습을 보노라니까 아무래도 남남끼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여러 남매의 한 가족이 나들이 온 것일까. 늙은 아바도 늙은 엄마도 함께 발랄하다. 그 모습에서 싱그러운 5월의 생동감을 실감한다.

  문득 내 눈 앞에 지난날이 되살아난다. 광화문 네거리 ㅡ . 하늘이 파랗게 펼쳐져 있었다. 가로수가 춤을 추고 있었다. 그 네거리를 건너서 화신 쪽으로, 5월처럼 싱싱하게 나는 발을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인파가 인도를 메우고 있다. 그 인파 속에 깜장 양복을 입은 중년 신사가 섞여 있다. B 선생이시다.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다) 언제나 깜장 양복 - 그것도 닳아서 반질반질했다 - 만을 입으시던 선생님이시다.

  그런데 어째서 무례하다는 생각을 안 했을까. 노상에서, 게다가 오랜만에 뵙게 된 스승님께 「실존주의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으니까 말이다.

  선생님은 나의 손을 다정스럽게 잡으셨다. 인파를 피해서 한 손으로는 나의 등허리를 감싸면서 가로수 그늘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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