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필드 한국사회, 고요한 죽음의 지혜가 절실하다
상태바
킬링필드 한국사회, 고요한 죽음의 지혜가 절실하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5.02.27 17: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죽음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가 그리 멀지 않은 집안 누이의 슬픈 소식을 들었다.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살갑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어려서는 꽤 똑똑하고 맘씨도 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결혼도 잘했다고 한다. 지난 추석 아기만 데리고 불쑥 친정집에 왔다. 아버지와 엄마 옆에서 자고 싶다고 하더란다. “엄마, 아빠 사랑해….” 그랬는데 새벽에 깨어보니 딸이 사라져 버렸다는 거다. 지갑도 휴대전화도 방에 그대로 둔 채였다. 딸은 며칠 후 강물에서 떠올랐다. 유서 한 통도 남기지 않았다. 어쩌다 마음에 병이 났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둔해서 그렇게 독한 마음을 먹은 줄을 까맣게 몰랐다”는 고향 아저씨의 한숨이 가슴을 찢었다.

| 2014, 코리안 킬링필드
새해 벽두에 서울 서초동에서 또 세 모녀 살해사건이 일어났다. 마흔일곱 살 가장이 부인과 두 딸을 살해한 것이다.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오면서 10억 원대의 아파트와 외제차까지 소유한 중산층이었다. 운이 나빠 실직을 했지만 자녀들에게 실직 사실을 숨기고 아내에게는 대출받은 돈으로 매달 400만 원씩 생활비를 줬다고 한다. 주식투자 실패 등으로 손해를 봤지만 그에게는 대출금을 갚고도 남을 아파트가 있었다. 아내의 통장엔 3억 원이나 들어 있었다니 가난 때문도 아니다. 하지만 실패를 모르고 달려왔던 인생과 유독 자존심이 강했던 성격은 갑작스런 실직과 실패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중산층 탈락의 상대적 박탈감과 ‘루저’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지난해 2월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의 기억도 생생하다. 60대 초반의 어머니가 30대 초·중반의 두 딸과 함께 반지하 셋방에서 연탄불을 피워놓고 동반자살하면서 집 주인에게 현금 70만원이 든 봉투를 남겼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홀로 식당 일을 하며 생계를 꾸리던 어머니가 팔을 다치면서 수입이 끊겼다. 두 딸은 이미 카드빚으로 신용불량 상태였고 큰딸은 심한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었다. 복지 사각지대의 실상을 보여준 이 사건은 ‘세모녀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의 계기가 됐다. 10월에는 서울 마포구의 68세 셋방살이 독거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