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쉬운 교리강좌] 신라불국토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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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리강좌] 신라불국토사상
  • 해주스님
  • 승인 2007.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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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쉬운 교리좌]

신라는 삼국중에서 가장 늦게 불교를 받아들였으나 창의성을 발휘하여 적극적이고 독특한 신앙사상을 활발히 전개시켰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신라 즉 불국이라는 신라불국토사상(新羅佛國土思想)이다.

이는 전불유연(前佛有緣), 신라진불국(新羅眞佛國), 현실불국정토관(現實佛國淨土觀) 등이 아우러진 것이다. 이러한 신라불국토사상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삼국유사>에 잘 나타나 있다.

먼저 신라가 과거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전불유연의 국토임을 알 수 있음은, 신라땅에 석가모니불 이전 가섭불 때의 절터가 있고 또 그 부처님이 직접 앉아 설법 하신 돌자리(迦葉佛幕宴座右)가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 아도화상이 어머니 고도령으로부터 신라로 전법할 것을 권해받은 말속에 전겁 전불시의 가람터가 신라 경도(경주)내에 일곱 군데나 있었다는 칠처가람터설이 보인다. 즉, ①천경림 금교(흥륜사 터) ②삼천기(영흥사 터) ③월성동 용궁남(황룡사 터) ④용궁북(분황사 터) ⑤사천미(영묘사 터) ⑥신유림(사천왕사 터) ⑦서청전(담엄사 터) 등이다. 신라불교인들의 신앙과 사상을 설화형식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칠처가람터 가운데 황룡사에 가섭불이 앉아서 설법하셨던 자릿돌이 있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찬자 일연은 불전 뒤쪽에 있던 연좌석을 직접 보았는데 나중에 몽고병란으로 황룡사가 타버렸을 때에 그 연좌석도 땅에 묻히고 말았다 한다.

또 자장법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진신을 만났을 때에 신라의 황룡사는 석가불과 가섭불이 강연하던 곳이라 연좌석이 아직 남아있다고 함을 들었다 한다. 그밖에 또 왕성 경주 외에 신승 남지가 오래 살고 있었던 영축산의 혁림암 자리도 가섭불 때의 절터임이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신라가 비록 법흥왕대에 와서 불교를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석가여래 출세 이전에 이미 이 땅에는 불법과 인연이 깊었다는 것으로 믿으려 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장소와 물증을 통하여 사실화시켜서 진지하게 신앙하였던 것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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