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월동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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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월동 준비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12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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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 雲門寺 김장하는 날

운문사 雲門寺 김장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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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사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갈 무렵
우리도 가을걷이와 겨우살이 준비에
더욱 바빠진다.
여름내 따서 말린 붉은 고추와
만세루 가득 채워졌던 고춧잎,
며칠 동안 따서 실로 꽁꽁 묶어
간장에 담가놓은 깻잎과 콩잎들.
대중이 사니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먹는 일이
가장 큰일이다.

| “피가 났다면서요?”
어떤 학인이 “생사대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린 지금 식사대사가 더 중요해요!” 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한바탕 웃었다. 백여 명이 넘는 대중스님들이 사는 산사에서 겨우내 먹을거리를 준비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김부각, 무말랭이, 시래기 만들기, 감 따서 곶감이나 홍시 만들기, 밑반찬 준비, 도토리 줍기. 그러나 그 중에서도 김장이 가장 큰일이다.
월요일 조회시간 강사스님들과 소임자스님들이 모여 일주일 동안 할 일과 행사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이번 주는 김장을 하기로 했다. 정확한 날짜는 일기예보를 보고 정하기로 했다. 며칠 우중충한 하늘이 계속되더니 오랜만에 청명한 하늘을 본다. 덕분에 빨랫줄은 만원 상태가 된다. 청소시간에 도량 구석구석 떨어진 나뭇잎들을 쓸고 또 쓸어도 바람 한번 불면 도량은 다시 낙엽 천지다. 은행나무 주위와 삼장원 앞마당 수목원 가는 길에 뒹굴고 있는 낙엽들을 쓸었다. 한 스님 왈 “낙엽만 쓸면 뭐 하겠노? 내 마음속 티끌은 언제 쓸어 다하겠노?”
오늘은 점심으로 ‘콩햄’이 나왔다. 주로 얇게 썰어 푹 찌거나 구워 상추쌈에 싸먹는다. 하늘이 높고 음식이 맛나는 계절이라 학인 스님들의 기운과 입맛을 돋운다. 콩으로 만든 햄으로 인해 전에는 꿈도 못 꿀 간식이 가능해졌다. 바로 핫도그다. 밖에서는 조그만 소시지를 안에 넣지만, 여기서는 소시지 대신 콩햄을 넣는다. 밀가루와 빵가루 입히고 기름에 튀긴 다음 케첩이나 설탕을 바르면, 학인들이 좋아하는 간식이 된다. 예전 입맛을 아직 잊지 못하는 것이 어찌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얼마 전 일어난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
보통 콩햄 핫도그는 한 스님 당 한 개씩 먹게 되는데, 많이 좋아하는 스님들은 공양 후에 후원에 나와 따로 챙겨가기도 한다. 그 날 공양 후 방에 돌아와 쉬는데 갑자기 한 학인이 달려와 숨 가쁘게 말했다. “강사스님, 00스님이 다쳤어요! 택시 타고 방금 병원에 갔습니다!” 깜짝 놀라 “아니, 왜 어디 어쩌다 다쳤어요?”라고 물었더니, 금당 곁에 모퉁이를 돌다가 분말 소화기통에 동방아 옷고름이 걸려 넘어졌단다. 넘어지는 찰나 갑자기 소화기통의 흰 분말이 눈에 분사되었고, 가슴 앞섶에 피가 낭자했다고 한다. “저런 눈이 다쳤으면 어쩌나, 피가 낭자했다니 도대체 얼마나 다친거지?” 걱정이 되었다. 얼마 후 눈에 안대를 하고 내게 온 학인, 의외로 일찍 돌아왔다. “피가 많이 났다며? 어딜 다쳤어요?” “눈만 다쳤는데요. 피 안 났어요.” 한다.
“피 났다던데? 앞섶이 엉망이었다며?” 하니, “아, 그거요, 그런 게 아니고요. 케첩이요. 콩햄 핫도그에 빨간 토마토케첩을 잔뜩 묻혀가지고 가던 중에 떨어뜨리면서 묻은 거예요.” “아이고 맙소사. 부처님! 많이 다치지 않았다니 다행이지만 제발 조심, 조심 천천히 다니세요. 스님!” 그 스님은 미안한지 겸연쩍은 듯 웃으며 절을 꾸벅하며 “잘못했습니다.” 한다. 아마도 옆에 있던 같은 반 스님이 경황 중에 케첩을 피로 오인한 모양이었다. 콩햄과 케첩을 쓰지 않던 시절에는 있을 수도 없는 소동이었다.
사실 운문사의 하루는 자잘한 사건 사고의 연속이다. 백여 명이 훨씬 넘는, 활기 넘치는 갓 출가한 스님들이니 왜 아니겠는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니 실수연발, 시행착오가 일상이다. 빈 김칫독에 빠지지를 않나. 나무에 올라가 감 따다가 발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일이 없나. 무말랭이 만들려고 무를 썰다 손가락을 베어 병원에 가지를 않나. 감나무에서 감을 따 홍시 만들려고 오백전 탁자 밑에 짚을 깔고 놓아 둔 감상자에서 밤에 몰래 촛불 켜놓고 홍시를 먹다가 불을 내지를 않나. 쯧. 지나간 소소한 사건 사고를 들자면 밤을 세도 모자랄 것이다. 그래도 부처님 경전을 배우는 초발심의 선한 학인들이 잘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열심히 대중을 부처님 섬기듯 공경하는 마음으로 사니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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