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은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상태바
전통은 지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 불광출판사
  • 승인 2014.02.07 0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39호 금속조각장 곽홍찬 장인
 
크기변환_제목 없음5.PNG
 
크기변환_20140207_205147.png

우리의 국보와 보물 중 불교문화재가 차지하는 비율을 알고 있는가. 조계종 문화부에 따르면 2012년 2월 기준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와 보물 가운데 불교문화재는 60%가 넘는다. 국보는 총 314점 중 179점, 보물은 1,721점 중 1,079점이 불교문화재다. 한국 문화의 정수가 불교문화에 집약돼 있음을 반증하는 통계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불교 산업에서 그런 고도의 문화적 역량과 기술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과거 찬란했던 우리 문화의 역량과 기술의 맥을 잇고 있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39호 곽홍찬(57) 장인을 찾아 불교 산업이 가야 할 길을 물었다.
 
| 4대째 내려오는 금속 조각장의 계보
부천에 한옥마을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화영상진흥원 뒤편, 골목이나 다름없는 좁은 입구를 지나 주차장에 차를 대니 비로소 한옥들이 눈에 들어왔다. 본래 이곳은 부천시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무형문화재 마을이었단다. 지금은 시 내부에서 벌어진 갈등 속에 많은 장인들이 떠나버렸지만…. 곽홍찬 선생은 이곳을 지키고 있는 몇 남지 않은 장인 중 한 사람이다.
견학 나온 어린이들의 재잘거림이 정겹다. 한옥 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곽홍찬 선생은 금속조각장이다. 일반적으로 조각장은 두 부류로 나뉜다. 양각과 음각. 고려시대 유행하던 돋을새김 기법이 양각이라면 ‘입사入絲’로 알려진 기술은 음각이다. 그는 두 기법을 모두 사용해서 공예품을 만든다.
입사의 경우에도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끼움입사 방식이다. 이것은 정으로 홈을 만들어 그 사이에 실을 끼우는 식이다. 두 번째는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쪼음입사 방식이다. 이것은 표면 전체에 자국을 내서 그 위에 금박이나 은박 혹은 금실이나 은실을 붙여 넣는 식으로 이뤄진다. 그중에서 그가 사용하는 방식은 끼움입사 방식, 그러니까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방식을 사용하는 셈이다.
곽홍찬 선생은 할아버지인 고 곽순복 선생으로부터 4대에 걸쳐 금속조각장의 계보를 잇고 있다. 부친 고 곽상진 선생에게 금은 세공기술을 배우고 서울시 무형문화재 은공장銀工匠으로 지정된 김원택 및 기능전승자 고 박기원으로부터 전통 조각기법의 기술을 전수받았다.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건 아주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요. 집안의 가업이었으니까요. 본래 공예 분야의 장인들은 서울의 궁궐 인근에 거주했죠. 저 역시 어릴 때는 인사동에 살았고요. 자연스럽게 부친 곁에서 일을 도와드리고 가까이에서 하나둘씩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업이 된 셈이에요.”
예전에야 궁에서 주문을 받아 공예품을 만들어 먹고 살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비싼 서울 땅에서 공방을 운영하기란 만만치 않은 일. 더구나 공예품 만드는 장인이 존중받지 못한 시대가 아니던가. 결국 그는 33년 전 미련 없이 훌훌 털고 오직 만드는 일에만 전념하고자 부천으로 내려왔다고 했다.
 
| 섬세한 손끝으로 완성해내는 전통 공예의 백미
그가 하고 있는 작업들은 섬세한 감각이 필수다. 모든 작품은 사용할 금속을 직접 추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전에는 금속을 추출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지만, 요즘 공예 분야는 그 정도의 분업이 이뤄지기 힘들다. 그래서 그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금, 은, 동, 구리 등을 손수 추출해 낸다.
추출된 금속은 용해 과정을 거쳐 괴로 만들어진다. 이것을 망치질로 단조 작업을 해 필요한 두께의 판이나 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실을 향로나 향완 등에 직접 문양을 내고 선을 따라 정으로 홈을 만든 후 끼워 넣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그런데 정으로 홈을 낼 때도 먼저 자국을 낸 후 그 안을 동서남북으로 때려서 홈의 아래쪽이 위쪽보다 더 넓어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끼움입사 방식의 핵심이다. 금속 실을 끼워 넣은 후에도 빠지지 않도록 하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실을 끼워 넣은 후에는 사포로 문질러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어주면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
그동안 곽홍찬 선생은 조각기술을 살릴 수 있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도전해왔다. 특히 전통 공예품 재현이나 훼손의 우려가 있는 작품들을 조각으로 재현하는 쪽에 힘써왔다. 그렇게 탄생된 대표적인 작품이 돋을새김으로 만든 ‘은제도금 타출 화조문표형병’, 은입사로 재현한 ‘천상열차분야지도’, ‘윤도’, ‘칠지도’ 등이다. 각각의 작품들은 양각과 음각 기술의 절정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다. 특히 ‘은제도금 타출 화조문표형병’은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을 법한 양각 기술의 백미다.
그의 조각기술은 불교 공예품들을 재현하거나 새로 만들어 내는 데 있어서도 아주 유용하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던 삼국시대 혹은 고려시대의 불교 공예품들은 그의 손끝을 통해 그대로 재현된다. 향완이나 향합, 향로, 사리함 등은 그의 손을 거치며 말 그대로 문화재급 작품으로 변모한다. 개별 사찰들이 종종 그를 찾아 작품을 의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마 예전에도 이런 공예 조각기법은 왕실보다도 불교계에서 더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여요. 전통 공예기법을 활용한 문화재들 중에 불교 문화재가 훨씬 더 많은 이유겠지요. 지금도 종종 사찰에서 작업을 부탁해 와요. 최근에는 범어사 금어연을 2년에 걸쳐서 했고요, 예전에는 수유리 보광사에서 대웅전을 지을 때 인연을 맺어 사리함과 마지 그릇을 만들어드리기도 했죠.”
 
 
크기변환_20140207_205225.png

크기변환_20140207_205239.png

“장인들이 만든 작품을 구할 수 있는 공간이 현재로서는 전무해요. 현대미술관은 서울에만 네 군데가 있지만, 전통미술관은 단 한 군데도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하물며 장인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꿈꾸는 건 턱도 없는 일이죠. 장인들의 작품이 일반인들과 괴리돼 있다는 건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크기변환_20140207_205259.png

 
| 장인들을 위한 미술관 하나만 있어도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공 들여 만든 작품을 일반인들이 쉽게 만나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장인들이 만든 작품을 구할 수 있는 공간이 현재로서는 전무해요. 현대미술관은 서울에만 네 군데가 있지만, 전통미술관은 단 한 군데도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하물며 장인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꿈꾸는 건 턱도 없는 일이죠. 장인들의 작품이 일반인들과 괴리돼 있다는 건 일반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정말 좋은 작품은 널리 알려져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 문제는 장인들의 생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해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전통 공예에 가까운 불교용품 시장이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좋은 작품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이 좋은 것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좋은 작품이 유통될 수 있는 경로가 없다는 건 명품이 세상에 나와도 빛을 볼 수 없다는 뜻이지 않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장인이 자신만의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기 힘든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였다. “국보가 만들어지지 않는 시대”라는 개탄을 하기에 앞서 우리가 가진 좋은 문화 역량과 기술을 널리 활용해 창의적인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한 상황이다. 세계적인 명차로 인정받고 있는 BMW가 대당 10kg의 은을 사용해 공예기법으로 내부 인테리어를 꾸몄다는 이야기는 결코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장인들의 작품을 쉽게 찾아보고 구입할 수 있는 미술관 하나만 만들어져도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곽홍찬 선생의 얘기를 들으며 불교 산업이 찾아야 할 해법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 장인들의 손길이 다시 불교문화에 와 닿고 더 많은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질 때,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은 불교 공예품에서 태어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의
은파헌銀波軒 | 032)349-4369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