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활자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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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활자들의 노래
  • 불광출판사
  • 승인 2012.09.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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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Heart

문자(文字)는 의사소통을 위한 시각적 기호체계로써 뿐만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주요한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문자, 활자를 작품소재로 활용하는 조각가 노주환(53)이 주목한 부분 역시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문화와 역사에 대한 투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문자를 형상화한다. 한 땀 한 땀 이어붙인 금속활자들로 지나쳐 버린 삶의 단면을 다시금 수면 위로 부상시키는 그의 작업은, 문자의 미적 완성과 더불어 그것이 함의하는 진리 혹은 지혜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리를 전하는 매개체



노주환 작가의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자그마한 금속활자들. 어쩌면 고물상 한켠에 틀어박혀 뿌연 먼지와 함께 세월을 머금고 있었을지도 모를 녀석들이다. 하지만 쓸모없음의 쓸모를 발견한 한 조각가의 혜안(慧眼)으로 이들은 다시금 생명력을 얻었다. 더 이상 인쇄기계의 부속품이 아닌, 예술이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금속활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활자 하나당 가격이 2,000원이나 할 때라 감히 작업할 엄두를 낼 수 없었죠. 그러다 한참 뒤에 고물로 나와 있는 활자를 보고는 이때다싶었는데, 그땐 또 다른 작업을 하느라 미처 손 쓸 겨를이 없어 어영부영 1~2년을 보내버렸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활자를 수집하려고 보니, 이미 웬만한 인쇄소와 신문사들은 활자를 전부 폐기처분해버리고 남은 게 없었습니다.”

그는 일 년여 동안 충무로, 동대문 등 서울시내 인쇄골목을 쥐 잡듯이 뒤진 끝에 겨우 작은 인쇄소에서 금속활자들을 얻을 수 있었다. 얼마나 발품을 팔았으면 인쇄소 사람들 사이에 활자 모으는 사람으로 이름을 날린 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전국 인쇄소로부터 활자 처분과 관련해 문의전화가 걸려올 정도였다고 한다. 하고 많은 소재들 가운데 굳이 활자에 주목했던 것은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그것의 상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평소 문화적인 요소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장승, 불상 등을 주제로 작업을 해오며 보다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우리문화의 가치를 드러낼만한 소재에 대해 고민했고, 마침내 문자(활자)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저는 창작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작으나마 깨달음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문자를 작품의 소재로 삼은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문자가 함의하는 내적·외적 아름다움을 형상화함으로써 사람들이 잊고 지내는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되살려내고자 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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