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이보다 더 값진 것이 어디 있으랴
상태바
선禪), 이보다 더 값진 것이 어디 있으랴
  • 관리자
  • 승인 2009.09.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심시심

이미 200년 전에도 문화의 시설과 제도가 인간과 사회를 오염시킨다는, 그런 염려를 한 선각자들이 없지 않았다.

 18세기에 파리를 모방하여 제네바에 극장을 세우려고 했을 때, 쟝 쟉크 루소는 이를 반대하였다. 그는 자기의 고향, 순수무구한 제네바가 파리처럼 오염되어 가는것을 걱장했기 때문이다.

  파리같이 이미 더럽혀진 대도시에서 는 그것을 정화시키기 위하여 극장같은 문화시설이 필요할는지 모르지만 제네바처럼 순결한 고장에서는 극장문화가 오히려 깨끗한 시민생활을 오염시키게 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루소는 그의 '학문 예술론' 즉 "학문과 에술의 진홍이 풍속을 순화시키는 데 기여 할 수 있는가 없는가" 에 대한 디죵 아카데미의 현상논문에서 기여할 수 없다고 명확히 단정했다.

 자연은 원래 티없이 선(善)하지만 문명이 이런 자연 속에 사는 사람을 퇴폐시키고ㅡ 여기서 문명이란 학문 문학 예술을 말하며 바로 이것이 타고난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을 억압하여 사람을 노예상태로 만들어 간다.ㅡ 이런 예속상태에 갇혀 있는 인간을 가리켜 문화국민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찌 루소 한 사람만의 주장이었으랴. 이런 현상논문이 일 등으로 당선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 당시에도 이미 이에 공감하는 식자들이 적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이제 미오염(未汚染) 지구란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 그로 부터 200년 후인 오늘 의 현실이다.

 한 실례로서 텔레비전이란 문명의 이기가 집집마다 안방 깊숙이까지 침투해 들어와 있을 정도이므로 문화란 것이 인간의 심성(心性)을 오염시킨다면 과연 그 극심함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이 오염된 심성을 정화(淨化)하는 일 또한 문화의 역할에 기대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오늘의 문제는 이토록 오염된 인간의 심성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가 어떠한 문화여야 하며 또 이런 문화 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이 점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종교가 이때문에 생겨났고 이때문에 필요하다면 오늘날, 더욱이 종교릐 사명이 무엇인가는 불문가지이다.

약인정좌일수유(若人靜座一須臾)  일념정심성정각(一念淨心成正覺)
승조항하칠보탑 (勝造恒河七寶塔) 보탑 필경쇄미진( 寶塔畢景碎微塵)
"우리가 잠시라도 고요히 앉아,
한생각 마음을 깨끗이하면 바른
깨달음 이루지만,
갠지스 강가 모래수보다 더 많은
칠보탑을 조성하더라도
그 보탑은 마침내 부서져 티끌이되리,"

『금강경』에도 "일체의 함이 있는 법은 꿈이나 허께비나 거품이나 그림자와 같고 또한 이슬같고 번개와같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라고 하였다.

 그러나 함이 없는 법[無爲法], 즉 마음을 닦아 자성(自性)을 밝혀 나가면 결국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이루게 되지 않으랴.

 이것이 불법이고 정법(正法)이고 또한 정좌정심(靜座淨心) 즉 좌선(座禪) 수행의 목적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의 환경이 공해로 뒤덮이고 사람은 부패로 찌든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식자들의 각성이 요망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분주한 세상살이에서라도 잠시 틈을 내어 좌선으로 마음을 밝혀 나가는 일만큼 이 세상에 더 값진 일이 있으랴. 무시겁래(無始劫來)로 타락해 온 나 자신을 돌이키고, 비뚤어진 사회를 바로잡기 위하여 좌선, 이 일이야말로 무엇에도 견줄 수 없다. 이런 선문화(禪文化)야말로 인간정화에 가장 바르고 빠른 길이기 때문이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