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또 다른 태어남을 위한 출발점
이렇듯 생(生)과 사(死)를 거듭하게 되는 윤회(輪廻)의 과정을 『유가지도론』에서는 사유(四有)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어머니 태에서 태어난 순간(생명, 탄생)을 의미하는 생유(生有), 태어나서 나이 들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하는 본유(本有), 수명의 길고 짧음과 관계없이 오로지 죽는 순간(육신과의 인연이 마침내 소진되는 순간)을 의미하는 사유(死有), 마지막으로 죽은 후부터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기 직전까지의 기간(49일)을 의미하는 중유(中有)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극히 선하거나 악한 업을 지은 사람은 죽으면서 곧바로 다음 생을 받게 되므로 중유기를 거치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중유기에 있을 때 다음생의 과보가 결정되고 각자의 인연과 업에 따라 윤회를 하게 됩니다.
불가(佛家)에서는 이러한 사후의 세계를 우리와 똑같은 중생계(衆生界)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삶의 끝을 죽음이라고 한다면 죽음 또한 다른 태어남을 위한 출발점이기에 죽음 이후의 존재는 우리와 형태만 다를 뿐 같은 중생의 위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영가(靈駕)가 천도(遷度)되지 않으면 이승의 주변을 떠돌게 되고 새 몸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외로움으로 정처 없이 방황하다 이승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지면 생전에 지은 업력과 정신만으로 새로 깃들 인연을 찾아 헤매는데 이 때 연(緣)이 가까운 사람 곁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부모로 인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내 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무명(無明) 때문에 유사한 업(業)과 연(緣)에 이끌려서 사생(胎, 卵, 濕, 化) 가운데 한 부모를 선택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와 부모와 조상들과의 관계는 어느 한 순간에 형성되어진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한 지중한 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불자들은 분명하게 깨닫고 볼 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보다도 이러한 중생계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불교 수행자들은 세속을 멀리하므로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 쉽습니다. 하지만 큰 깨달음을 이루셨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아버지인 정반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임종을 지켜드렸으며, 현생의 부모뿐만 아니라, 고통 받는 선조들을 위해서도 현생의 자손들이 공덕행을 지어 해탈케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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