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서울 奉恩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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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寺의 향기] 서울 奉恩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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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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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寺의 행기를 찾아서
▲ 봉은사 대웅전

 

    봉은사의 沿革

 봉은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고구려 아도(阿道)스님, 또는 신라의 연회(緣會)스님, 혹은 고려시대 법경(法鏡)스님 등 여러 설이 있으나 현재 사적비(事蹟碑)에 기재되어 있는 신라 38대 원성왕 10년(794년) 7월, 연회스님 창건설이 유력하다 하겠다.

 조선조 이전의 역사 기록은 알 수 없고, 원래 견성암(見性庵)이었던 것을 연산군 원년에 소혜왕후(昭惠王后 · 덕종의 비)가 불교를 숭앙하여 광주(廣州) 선릉(宣陵 : 성종릉)에 고찰인 견성암을 원찰(願刹)로 삼고, 특별히 성종을 위하여 능 동편에 봉은사를 중창<일설에는 창건>하였다. 한다. 또는 연산군 4년 정현왕후(貞顯王后 · 성종의 계비)가 선릉을 위하여 절을 중창하고 봉은사 라고 명명하였다 한다.

 명종 17년(1562년) 9월 정능(靖陵 : 중종의 능)을 선능의 동편에 옮기면서 현재 위치인 수도산(修道山)으로 옮기면서 크게 중창하였다.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했지만 봉은사도 임진왜란, 병자호란(인조 14년)으로 크게 불탄 것을 선화경림(禪華敬林) 스님이 권선하여 사찰을 중건하였고,  또 현종 6년(1665년)에 스님들이 재산을 모아 중건을 시작하여 숙종때 완성되었다.

 철종 6년(1855년) 봄, 남호영기(南湖永奇) 스님과 스님들이 모연하여 <화엄경소초> 80권, <별행> 1권, <준제천수합백> 1권, <천태삼은시집> 1권 등을 인각(仁刻) 하고 다음해 가을 장경각인 판전(板殿)을 짓고 경판을 봉안하였다.

 1912년 청호학밀(晴湖學密) 스님이 중수를 하고 양능 밖, 미개간지를 수십정보(町步) 개척하고, 산림 15만평을 봉은사 소유로 만들어 사세(寺勢) 중흥의 자본으로 삼았다. 이후 1939년 또 불탄 것을, 1941년 일초태욱(日初泰旭) 스님이 중창하였다.

 

 해방 후 근년에 들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광주군이던 것이 서울로 편입되면서 강남구 삼성동 115번지로 되었으며, 이 일대가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종단이 봉은사 토지 10만평을 매도한 데서 온 숱한 잡음은 오늘도 우리 기억에 생생한 바다. 현재는 대웅전을 중심하여 약3천9백여평 정도의 대지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근년에 들어서서 이 사찰의 외호를 맡은 스님들의 노력으로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여 대웅전 증축은 물론 3층석탑, 석등, 범종 등을 조성, 봉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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