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수행과 생활이 하나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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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수행과 생활이 하나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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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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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나의 믿음 나의 생활
▲ 법륜 불자교수회 회원들과 함께, 오른편에서 세번째가 필자

 불교를 처음 접하였던 고교시절은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인다. 여름방학 동안 남산 칠불암에서 함께 공부하였던 그립고 보고 싶은 얼굴들이며, 불적을 찾아 천방지축 돌아다니던 그때 그 모습들.

 온산을 뒤흔들어 놓던 새벽 종성과 목탁소리, 옛날 원효와 대안이 참선했다던 돌방구에 앉아 아침의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는 경이로움.

 분황사와 경주고등학교 강당을 들락거리며 영남불교학생회 300여명이 함께 가진 동계수련대화, 경주시내 도량식을 마치고 났을 때 너무너무 추워 온손과 발이 꽁꽁 얼어붙었던 기억들.

 표충사 수련대회 준비한다고 하이타이 풀어 수 십 년 묵은 떼를 땀 뻘뻘 흘리며 밀고 밀던 일이며, 해산스님의 그 자상한 미소. 수련대회 때 처음으로 1080배를 마치고 났을 때 새벽의 의미와 함께 온 전신을 엄습한 환희로움은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잊혀지지 않고 생생한 감동으로 남아있는데….

 그때 불교중흥하자고 다짐했던 수많은 그리운 얼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직도 불자로 남아 있을까? 생활을 탓하며 더러는 개종도 했겠지.

 우리의 삶은 엄밀한 의미에서 비약과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약이란 사회적인 구조에 의하여 주어질 수 있는 표면적인 의미이고 우연이란 시간과 공간의 인식부족에서 주어지는 감각적인 의미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결국 인간이 살아가면서 주어지는 제일의적 의미는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명제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공동 과제이며, 우리의 삶 또한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이 명제를 구체화해 가는 것이다. 구체화한다는 것은 뿌리를 내림이요, 줄기와 잎으로 지상에 얼굴을 내밈이요, 무성하게 자라 부처님과 같이 큰 그늘을 만들어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과 그늘을 나누어 가짐으로 자유와 평등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파레토가 종교란“경험을 초월하는 그 어떤 것을 취급한다”고 주장하였을 때 그는 종교란 관찰 가능한 경험적 사실이 아니며, 과학적 사고방법에 의거해서 설명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즉 수행을 통한 영혼의 정화에 의한 영적인 교감으로 보고 있다.

 믿음과 수행을 통하여 현실적인 삶을 소중하게 할 수 있으며, 과거의 잘못을 벗어버릴 수 있으며, 다가올 미래는 광명과도 같은 밝은 빛이 될 것이다.

 평소 갖고 있는 나의 믿음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어설픈 걸음마이지만 불교신행인으로서 나는 무엇을 믿고 있으며, 어떻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는지를 다시 한 번 정리해보는 의미에서 마음에 담고 있는 몇 가지를 적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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