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인으로 뿌리를 내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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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인으로 뿌리를 내리고
  • 관리자
  • 승인 2009.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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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나의 믿음 나의 생활

 중 · 고등학교 시절 교회에 다녔던 나는 한 때는 구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도 불쌍해 신학대학까지도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부처님께 귀의하여 ‘이런 하루를 살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으니 전생부터 불교와의 인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아침 다섯 시가 되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좌선을 하고 금강경 2독을 마치면 부처님 전에 ‘감사한 하루를 살겠습니다’는 기원을 올리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잠들 무렵 다시 금강경을 독송하여 반성과 함께 내일의 계획을 세우며 다짐해 나가는 것이 나의 규칙적인 일과로 되어있다. 이러한 규칙적인 일과 수행은 나의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공부하면 할수록 값지고 귀한 지혜와 큰 사랑의 말씀을 중 고 대학교 시절을 통하여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 생각해도 의아스럽다. 불교가 이렇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꺼이 방문하여 전도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십여년이 넘도록 살아온 고장에서 간혹 절에 나가신다는 아주머님과 불교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도 알고 있었지만 “종교는 다 같다”는 지나친 관용의 개인적 차원의 종교관이 그들의 생각 전부였다.

 불교에 관하여 불교를 믿지 않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나 또한 학창시절 국사시간을 통한 불교에 대한 알음알이가 전부였다. 불교가 고구려 소수림왕대에 중국으로부터 전래, 신라시대 이차돈 성사의 순교로 공인되었고, 민중불교 대중불교를 위한 원효스님의 파계와 사랑, 고려 말 불교의 타락으로 조선 시대가 되면서 불교 배척이 일어나고 사대문 안으로의 승려의 출입이 금지되었으며, 임진왜란 시 사명 서산스님 등의 승병운동이 있었고, 일제 식민지 치하 에서는 스님들의 결혼이 인정되어 일본 불교화의 정책적인 추진이 있었다는 사실과 그 가운데에도 구국을 위해 백용성ㆍ한용운 스님 등이 독립투쟁에 온 힘을 기울였다 등이었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현실 속에서 그저 산사에 댕그라니 앉아서 사람들이 찾아와 주기를 바라는 개인적인 구세종교, 죽은 이의 영가천도를 담당하는 장례식 불교라는 인식이 나에게 가득 차있었다.

 그러던 중 1985년 서울 불광동에 위치한 소년원에서 영어 과목 검정고시를 위한 자원봉사를 하면서 나는 현재 사단법인 ‘한국불교 대원회’와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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