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신 라 편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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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활약한 우리 스님들 -신 라 편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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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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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불교사(24)

 중국학계에 크게 기여한 원측

 원측(圓測)법사는 신라의 왕족으로 진평왕(진평왕)35년(613)에 당시의 서울 경주에서 태어났다.

 일찍이(현존 기록에서는 3세라고 있음)출가하고 15세에 당나라로 건너갔다. 당나라에 도착한 그는 당시 중국의 이름있는 고승들을 찾아 배움을 구하였다.

 거기에서 원측스님은 당시 당나라의 대표적인 학자로서 섭대승론(攝大乘論)의 대가였던 법상(法常 ; 567~645)과 승변(僧辯 ; 568~642)의 두 법사에게서 주로 경론(經論)을 공부하였다. 그는 남달리 천성이 총명하였으므로 비록 수천 만언(數天萬言)이라도 한번 들으면 잊어버리는 일이 없었다.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태종(太宗)황제의 배려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장안(長安)의 원법사(元法寺)에 머물게 되었다.

“원측스님의 제자 중엣 서명사주 자선법사와 대천복사 대덕 승장법사 등이 그 유해 일부를 보함 석곽에 담아서 스님이 생전에 자주 왕래하였던 종남산의 풍덕사동쪽 고개마루 위에 따로 무덤을 모셨다.”

 그 곳에 머물면서 원측스님은 소승불교의 논장(論藏)인 아비담(阿毘曇)과 성실론(成實論)과 구사론(俱舍論). 비바사론(毘婆娑論)등을 열람하고, 대승의 경론 및 고금(古今)의 장소(章疏)를 모두 다 통달하였다. 그가 33세 되는 정관(貞觀)19년 (645)에 유명한 삼장법사(三藏法師) 현장(玄奘 ; 602~664)스님이 인도에서 돌아왔는데, 그때 원측스님은 미리 현장법사가 돌아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중국의 불교 역사에 있어서 현장법사가 남긴 업적은 매우 큰 것이었다. 그는 인도에의 어려운 여행길에서 중인도의 나란타사(那爛陀寺)에 이르러 대학자이며 고승인 계현(戒賢)스님에게 유식학(唯識學)을 배웠고, 승군론사(勝軍論師)등 당대 석학 대덕을 만나 불교학문의 깊이를 더하였다. 부처님의 끼치신 발자취를 모두 순례 참배(巡禮參拜)한 것은 물론이고 불교와 관련있는 인도 서역의 여러 지방을 두루 거쳐서,당나라를 출발한지 17년만에 범어원전(梵語原典) 657부를 가지고 돌아왔다. 태조왕제의 칙명의 의해 국가적인 시설로 마련된 번경원(翻經院)에서 그는 경전 번역 사업을 시작하였으며, 600권 대반야경(大般若經)을 비롯하여 76부 1347권의 많은 경전을 번역하였다. 그와 같이 현장법사는 번역을 많이 한 것도 유명하지마는 그 번역 자체가 훌륭하여 그보다 이전의 번역을 구역(舊譯)이라 하고 그이 변역을 신역(新譯)이라 일컬었으며, 중국 역경사상(譯經史上) 구마라습(鳩摩羅什) 법사와 아울러 2대 역성(二大譯聖)이라 불리운다.

 그러한 현장법사가 원측스님을 한번 보고는 크게 인정하였으며, 유가사지론(諭伽師地論)과 성유식론(成唯識論)이 번역되었을 때 원측스님으로 하여금 강의하게 하였다. 그 밖에도 현장스님이 번역한 대승 소승이 많은 경론들을 모두 이해하였다. 그뒤 원측법사는 황제의 칙명의 의하여 서명사(西明寺)의 대덕(大德)이 되었다.

 이 서명사에 머물면서 그는 해심밀경소(解深蜜經疏)10권 등의 많은 저술을 하면서 당시 중국의 불교 대흥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원측스님은 원래 성품이 산수(山水)를 즐기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였으므로 서명사를 떠나 종남산(終南山)의 운제사(雲際寺)로 가서 머물었다. 그러다가 다시 그 절에서 30여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서 조용히 마음을 닦으며 8년을 지냈다.

원측스님은 원래 성품이 산수(山水)를 즐기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였으므로 서명사를 떠나 종남산(종남산)의 운제사(운제사)로 가서 머물었다.”

  그 때 서명사의 스님들은 원측법사가 다시 돌아와 서명사의 대중들을 지도해 줄 것을 간절히 요청하였다. 하도 그들의 청이 간절하였으므로 그는 한적한 곳을 떠나 다시 서명사로 갔다. 그 곳에서 성유식론을 강의하는 한편, 인도<中天竺>의 삼장법사인 지바하라(地婆訶羅)와 제운반야(提雲般若)의 역장(譯場)에 증의(證義)가 되어 경전 번역에 큰 힘이 되었다. 그는 여섯 나라말<大國語>에 통달하였다고 할만큼 외국어에 능통하였으므로 경전을 번역하는 일에도 중요한 책임을 맡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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