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의 제 1칙 무 (無 )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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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문관」의 제 1칙 무 (無 )무무…
  • 관리자
  • 승인 2007.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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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을 결정한 불교서

  교양이나 인생관 등를 이갸기 하려면 자연히 인생 절반을 보낸 일본에서의  것과 연관시키게 되니까 거북해진다.  후천적 인격형성 과정이 동경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   그러나 불광(佛光 )의 세계는 무량무변, 모든 것을 초월할수 있다.

  재일교포란 일본에서는 멸시당하고, 조국에서는 백안시당히기 일쑤다.

  끌려간 부모님을 원망할 수 도 없고, 오직 잘못 얼룩진 역사책을 뒤적거리면서 한숨 지을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동경 한국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주위에서는 일본에서 살아가려면 상과나 공업계를 나와야 된다고 했었지만 철학과로 들어갔다. 

  한마디로 철학은 밥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들의 심려는 현실적으로 올바른 판단이다.  그러나 나의 정신속에는 여러 가지 풀어야할 과제, 즉 민족 차별, 사람과 죽음, 인간존재 등이 가득했었다.  순수랄까 정열이랄까.   지금에 와선 그러한 젊은 날의 나의 모습이 그립다.

  어려운 입시지옥의 관문을 뚫고 대학마당에 들어서자 식중독에 걸려 혼이 났다.  희랍철학으로 시작하여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워, 헤겔, 까뮤, 싸르트르, 존 듀이 등등 홍수처럼 아니, 진수성찬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 마구 먹고 마시다 보니 복통을 일으키게 되었다.

  3학년 때 승가대학 출신인 승려 교수님의 「반야심」과「금강경」강의를 수강하게 되어 한가닥 불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불교철학적 이론으로는 알 듯 했었지만 무엇인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어느 날 교수님께서 빙굿이웃으시면서 "한번 씨름해보시지요."  부드럽게 이야기하시면서 「무문관(無門關) 」한 권을 주셨다.  캠퍼스를 걸으면서 한번 쫘악 훑어 보았는데 청천벽력, 머리통을 한방 꽝하고 얻어 맞았다.

  '무 (無)"'일 자의 철학을 만났다.  그 진수를 터득하려고 그 발로 휴학을 하고, 영평사(永平寺)라는 일본 최고로 규율이 엄하고, 선풍(禪風)의 전통를 몇백년 유지해 내려오는 조동종 본산 산문 을 두드렸다.  산문(山門)은 굳게 잠기어 속진을 거부했었으나 단과료 등에서 인내의 한도를 시험한 후 겨우 한 달만에 허락받고 일년 정도 지관타좌 (只管打坐)했다.

  면벽(面壁)하는 동안, 무문 관의 진수를 터득해보려고 정진한 것이다.  즉 공안현성(公案現成)의 뜻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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