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人間)으로 다시 환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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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人間)으로 다시 환생하기를
  • 관리자
  • 승인 2009.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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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원로작가 김동리(金東里)

  한국의 문인(文人)중에서 '김동리(金東里)' 만큼 귀에 익숙한 이름도 드물다. 그만큼 [무녀도 (巫女圖)][등신불(等身佛)][사반의 십자가]등으로 대표하는 동리 선생님의 작품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있는 점에도 기인하지만, 해방이후 한국문학가 협회 소설분과위원장을 비로하여, 한국문인협회이사, 예술원 회원, 서라벌예술대학학장, <월간문학>창간 등 화려한 이력은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김동리 선생님의 연세 올해로 일흔여섯, 그러나 여전히 각종 문학단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계시며, 서예에도 조예가 깊어 한.중.일 서예문화 교류협회 회장으로 계시는 등 활동을 쉬지않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 동리 선생님댁의 거실은 마치 골동품 전시장을 연상케한다. 벽면을 가득 메운 그림들, 수북히 쌓여있는 각종의 문학잡들, 서예도구와 습작의 화선지 등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진 것이 변함없는 움직임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그래서인가 선생님은 70노인이라 믿어지지않을만큼 건강해보인다.

 신비스러움의 실체는 종교

 "만약 어느나라 사람이 묻는다면 우리나라에는 당신에 나라의 작가와는 견줄수 없는 신비스러운 작가 김동리가 있다 라고 서슴없이 말하겠다"고 한 어느 작가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는 김동리 선생님의 작품이 번역될 수 없는 한민족의 토속적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비스러움의 실체는 종교성이라 하겠다. 물론 작품 전체적으로 볼때 어느 하나의 종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통종교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김동리 선생님의 작품을 성격상 구분짓는다면 크게는 종교적인 것과 휴머니즘에 바탕한 사회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그중에서 종교적인 작품을 다시 샤마니즘([을화] [화랑의 후예] [당곡의 무당]..등), 기독교([사반의 십자가] [목공요셉]...), 불교([불화] [극락조]...)로 구분한다. 전체 작품 편수로 보면 사회적인 것이 많겠지만 상대적으로 종교성이 강한 작품들에 사람들은 선생님을 신비적이고 허무적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어려서 같이 놀던 아이가 죽었어. 그것이 죽음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라 할까. "죽음에 대한 이른체험은 자연 종굥0 대한 관심으로 나타난듯 하다.

 선생님의 작품 가운데 불교적인 것으로는 [불화(佛畵)](1937)[윤회설](1946) [극락조](1968) [등신불](1963) [까치소리](1966)...등이 있지만 사먀니즘이나 기독교 계통도 비슷한 편수가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인연이나 사상의 바탕은 불교라고 말씀하신다. "원래 집은 유교집안이야. 그런데 학교는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다녔지. 그러다 독서생활로 들어가 20 전후부터 불교사상이 마음에 들어왔어."

 등신불(等身佛)을 쓰게된 계기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多率寺)는 김동리 선생님과 인연이 깊은 절이었다. 창작활동을 위해 찾은 절이기도 하였지만,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 대상의 '사설강습소'에서 야학을 하기도 하였고, 만해스님과 김법린 선생들을 만나 불교사상을 깊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다솔사 주지는 지금은 돌아가신 효당이라는 스님이 주지였어. 그 스님은 민족사상을 갖고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많이 숨겨주었는데 그때 우리 백씨(伯氏)하고 법산(전 문교부장관. 김법린)이 그곳에 숨어 있었어. 그래서 나는 백씨 소개로 알게 되었지. 한용운 스님도 가끔 오시곤 했었는데. 한번은 학원이 끝나고 절에 가보니, 만해스님, 맏형, 효당스님 세이서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하는데 화제가 소신공양(燒身供養)이었어. 그래서 그말이 무슨말이냐고 물었더니 몸을 불살라 열반에 이른다는 것이래. 나는 그말을 듣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 왜냐 인간의 길을 불살라야 성불이 된다고 했거든. 그런데 나는 인간에 대한 신념이 강하거든"

 자기 자신 즉 인간에 대한 신념이 강한 김동리 선생님에게 이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삶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자신에 대하여 인갼에 대하여 근본적인 의문을 던져주었던 것이다. 이것은 후에 고등학교 교과서도 나와 잘 알고 있는 [등신불(等身佛)]을 쓰게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하신다. 김동리 선생님은 [등신불]에 대하여 '인간의 길과 열반의 길이 서로 착잡하게 얽히는 문제를 그렸다'고 말씀하신다. "열반의 길은 인간의 해탈에 있다고 하지. 결국 그것은 아집에서 벗어난다. 내가 없음(無我)이 아닌가, 그러나 인간은 자아(自我)가 중심이거든. 인간의 길과 열반의 길이 착잡하게 얽혀있음을 생각하고 쓴 것이야. 등신불을 난 이렇게 표현했지.

'아름답고 거룩하고 존엄성 있는 그러한 불상과는 하늘과 땅 사이라고나 할까. 허리도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같은 것이 사람의 가슴을 움켜잡는 일찌기 본적도 상상한 적도 없는 가부좌상."

 인간에 대한 강한 신념

 감동리 선생님의 작품의 바탕은 종교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바탕에 휴머니즘을 깔고 있다고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거긋은 한국적 또는 민족적이라는 것에 바탕한다고 하신다. 여기서 김동리선생님은 휴머니즘은 단적으로 '기독교와 대립된 것' 이라고 단정하셨다. "기독교는 원래 신본주의(神本主義)야. 휴머니즘은 인본주의(人本主義)지. 고대는 신: 인간으로  대립해 있었고 기독교 전성기인 중세는 인본주의가 완전히 배제된 시대였지. 그러다 르네상스기 즉 중세말엽과 근대 여명기에 인간이 교회와 대립하여 근대사상을 일으키지 않았어? 서양사상은 처음부터 신과 인간이 대립하고 있었어. 기독교 전성시대에는 인간이 신에 속해 있었지만 근대는 인간 중심이 되어 교회가 부속된 걱이지. 그래서 나는 기독교 지도자들이 인간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라고 봐."

 김동리 선생님이 이러한 생각은 대표작 [사반의 십자가]에서 표출되었었다. 그리고 여기서 김동리 선생님은 영혼과 육체의 조화 가능성은 몰락해 가는 서구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동양문화 속에 있다는 시사를 주고 있었다. 그래서 김동리 선생님은 기독교보다는 샤마니즘에 애착을 느끼고 그것을 불교로 승화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불교와의 만남은 인연도 인연이려니와 자연스럽게 불교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김동리 선생님의 인간에 대한 애착은 집요하리만ㅋㅁ 강하다. 그래서 불교를 택하였을 지라도 해탈. 열반보다 윤회전생을 믿는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불교교리를 실천하여 성불해서 극락으로 간다는 신념보다 내가 죽어서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야겠다는 쪽이야. 그것은 해탈, 성불, 열반보다 윤회 환생쪽이라 할수 이지. 어찌보면 불교보다 힌두교쪽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어."

 인간으로 태어나고자 하는 김동리 선생님의 이유는 간단하다. "세상만사를 보고 느끼는 기능이 인간이 제일이기 때문이지. 다른 초목이나 짐승들은  인식하고 느끼는 기능이 사람보다 형편없이 낮아. 인간은 생명체 가운데서 차원이 제일 높지.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태어나서는 안되지. 그것도 실제 짐승이나 벌레보다는 낫지만, 그러나 사람은 죽었다고 해서 그렇게 확 변하는게 아니야. 이만큼 마음의 경지를 닦아 왔으면 죽어도 그만큼의 경지를 갖고 태어나지."

 김동리 선생님은 앞으로도 자신은 몇번이나 더 인간의 길을 택하리라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성불의 길을 아예 염두에 두지않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그쪽에 도전해 볼지 모르지. 그러나 지금은 엄두도 안나고 그냥 인간으로 태어나겠다는 것뿐이야." 김동리 선생님에게 있어 자신에  대한 신념과 인간에 대한 자부심은 그의 문학속에서 [휴머니즘]으로 자연스럽게 표출되었다고 하겠다. 김동리 선생님 작품에는 허무와 운명이 너무 짙게 맹목적으로 깔려있다고 비판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선생님의 신념이나 생활 어디에도 허무의 냄새를 느낄 수는 없었다. 문단에서도 언제나 집권층의 자리를 내놓은 적이 없었으며, 사생활 어디에서도 좌절의 흔적조차 비춰지지 않는다.

 운명과 허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용해시키기 때문일까. 그리고 선생님은 지금도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원할만큼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그래서 일반보다 인간의 길을 택하겠다고 할 정도로. 동리 선생님은 어쩌면 한번도 허무한 생을 누리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한마디 한마디에 조리가 남아있고 말씀에 애정이 담겨있음은 현실적으로 선생님의 생명력을 말해 주고 있다. 다만 소리를 크게 질러야 들을 수 있는 귀와, 쓰다만 소설을 마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씀에서 나이를 느끼게 할뿐.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열반보다 인간의 길을 택하겠다는 의지에 대한 마취력이다. 자아에 대한 강인한 집착, 그것은 중생이기에 강한 흡입력을 발동시킨다. 바로 그것이 김동리 문학이 신비하지만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원인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김동리 선생님은 버리는 길과 집착하는 길이 과연 두개인지 아니면 하나인지 판단을 보류하게 만들었다. 다만 그의 끊임없는 정열은 인간에 대한 강한 신념에서 나온다는 것에 경탄할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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