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풀과 나무
상태바
겨우살이풀과 나무
  • 관리자
  • 승인 2009.05.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구실한담

빛바랜 분홍연등은 몇 년전인가 본교 불교학생회에서 4월 초파일 연등행사를 위해 내게 갖다 준 것이데, 나는 아직 그것에 불을 밝히지 못한 채 문옆 흰 벽에 달아 두고 있다. 그 다음 문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른쪽 벽에는 경주 남산의 마애불이 큰 액자에 받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지금은 사회의 역군이 되어 있을 한 공학도가 위험을 무릅쓰고 산 높이 올라가서 나를 위해 찍었다는 사진이다. 보통 수준을 넘는 그의 사진 솜씨 탓도 있지만 그 의연한 부처님 모습은 내 마음속에 큰 자리를 메워 주고 있다.

그와 내가 만나던 해, 그는 공대 2학년 재학중이었다. 전공과에 회의가 생겨 뭔가 자꾸 꼬이기만 해서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체 유심조란 말, 들은적 있는가?”로 시작해서 ‘일체만물 개유불성’이란 법구를 그가 간직하고 돌아 나설 때까지.

그후 그가 내 방문을 다시 열고 들어섰을 때 그 표정은 너무도 밝고 아름다웠다. 상긋 웃는 흰 이 사이로,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말이 새어나올 때 우린 서로 흐뭇했다. 우중충하고 맥없이 보이던 그의 옛 모습이 싹 가셔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그는 일년에 한 두 번 그 문을 열고 들어오곤했다. 내방에 있는 모든 불화는 그의 선물들이다. 지금은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길목이니 나는 또 그렇게 그가 들어오려니 하고 기다려진다.

요즈음 내겐 한폭의 사진이 늘었다. 좀 색다른 내용이어서 학생들이 궁금해 한다. 그것은 금년 봄 교수연수차 속리산에 내려갔다. 어느 솜씨있는 교수분께 부탁드려 찍어받은 사진이다. ‘겨울살이풀과 나무’ 또는 ‘풍식초와 나무의 공존’이라고 이름할까 싶다. 법주사 일주문앞 숲가에 그런 나무를 여러그루 볼 수 있다. 정확하지는 않으나 풍식초(風植草)로 불리기도 하고 ‘겨우살이풀’이라는 일명도 있다 한다. 바람이 불어다 주는대로 씨앗이 나뭇가지에 떨어져 거기 기식하며 살고 있는 풀의 사진이다. 나뭇가지가 썩어가야 생존이 가능해지는 그 어이없는 생리, 그 자연의 이치를 제대로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찍어 받은 것이다. 그 사진이 지금 내 책상앞에 놓여 있다.

마침 신학기 과정에 영미 희곡이 들어있는 터라 우린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를 읽기로 했다. 작가 ’유진오닐(Eagene O'Nell)'은 자전적인 극을 많이 쓴 극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이 작품도 예외없이 자신의 가족이야기가 된다. 이를 끝으로 그는 가고 없다. 그의 유족에 의해 빛을 본 이 공연은 극계에 많은 감동을 일으킨 작품으로 지금도 살아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