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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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 관리자
  • 승인 2009.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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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메모

지금까지 삶으로 이어지는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 ‘배움’이라는 행위로 일관되어 있다. 어려서 말을 배우던 시절부터 글방이라 불리는 촌 사랑방에 다니기 시작해서 오늘이 시점까지 현대화된 학교라는 어른과 어린이의 모임터가 그대로 나의 삶의 공간이 되고 말았다. 생각하면 어지간히도 주변머리없는 사람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제는 학교에 더 다니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집에서 공부해라 하시는 아버지의 진로지도는 조국광복이 가져온 교육철학의 궤도수정이었고, 이 엄하신 가르침을 따라 촌구석에서 칩거의 수업을 거쳐 다시 중등교육의 과정을 거치기로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낸 것이 스무 살을 갖 넘겨서였으니 대학을 마치기까지는 같은 또래의 친구들에 비하여 ‘만학’이라는 말을 듣게도 되었다.

20대 후반에 대학을 마쳐 놓고 한해를 방황하다가 곧바로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 교사라는 가르침의 장인 학교의 공간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삶’과 ‘배움’이 항시 한 공간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석사니 박사니 하는 학위가 가르침의 현장에서는 무슨 자격증이나 되는 것처럼 된 사회적 제도이고 보니 가르침과 배움이 제도권 안에서 묶여 돌아간 것도 사실이다. 박사라 불리우는 학위를 되도록 남몰래 얻어 보겠다하여 얻던 해가 아들놈은 석사, 막내딸이 학사를 받는 같은 해인 쉬흔을 넘기고도 몇 년 후에 받았으니 당시의 솔직한 심정은 곁눈 팔다 얻은 자식같아 쑥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렇듯 배움과 가르침의 톱니바퀴 속에서 지내면서 배움보다 가르침의 어려움과 두려움은 오늘의 이 순간에도 지워 버릴 수가 없다. “배움을 싫어하지 말고 가르침에 게을리 하지 말라”는 성인의 가르침은 어려서부터 들어 온 처지이기에 교단이라는 현장에서 이 말은 꼭 기억하고 실천한다는 마음이야 이미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쉽게 이행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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