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미술의 이해] 중국의 불교미술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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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이해] 중국의 불교미술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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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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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황의 환경적 요인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도는 놓은 산맥과 열사의 사막이 가로놓여 고대로부터 인간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험준한 지형적 악조건을 넘어서 교통이 길을 제시한 것은 -경제 교류를 위한- 대상(隊商)에 의한 무역로의 개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는 몇 갈래의 길이 있는데 크게는 천산남로(天山南路)와 천산북로(天山北路)라 할 수 있다. 이 길들은 소위 비단길(Silk Road)로 불리우며 돈황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돈황은 북경에서 비행거리가 4천km나 되는 중국의 서북변방 사막지대 한가운데 위치한다.

고대로부터 유럽,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에 이르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하며, 서역과 밀접한 교류를 하던 시대에 중국불교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였고, 지금은 중국 불교미술의 가장 큰 석굴사원일 뿐만 아니라, 세계최대 채색소조, 벽화박물관으로 중국문화사에 우뚝선 기념물이라 하겠다.

돈황미술은 중국미술에서 분리하여 중앙아시아 미술로 정리하여야 하나, 한정된 지면으로 인하여 중국미술에 포함시켜, 중요 석굴사원만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중앙아시아 미술로는 오늘날 중국의 신강(新强)지방과 소련의 투르케스탄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돈황을 비롯한 카쉬가르, 코탄, 쿠차, 투르판을 말한다.

이들 지역은 한(漢)시대로부터 서역으로 이르는 통로로서 점차적으로 중요성을 갖게되었고, 그 중 돈황은 중국 국경선에 위치한 군사.정치.상업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이러한 지정학적 성격은 돈황의 불교미술이 지리적으로 가까운 간다라 불교미술을 근간으로 하면서 중인도의 마투라미술과 중앙아시아 여러지역의 조형적인 요소가 가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미술 및 당시 이 지역에서 부침하던 티베트, 흉노등의 미술까지 어우러지면서 가이 백천의 강이 바다에서 합일하듯한 국제적인 미술양식을 창출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각 지역의 다양한 조형미술의 특성이 가미되었다고 하나 ‘불교’라는 종교에 융합되어 불교의 도상적 규범속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초기에는 국제적인 여러 양식들이 뒤섞여 복잡한 양식적 전개가 있었으나 기간이 지날수록 중국화로 기울어졌었다.

돈황 막고굴의 개착 및 석국유형과 미술사적 위치

감숙성 돈황 명사산(鳴沙山) 동쪽기슭 1.6km에 이르는 천불동(千佛洞) 또는 막고굴(莫高窟)이라 이름하는 무수한 석굴이 있다. 증국대륙에 현존하는 50여개의 석굴중 채색 벽화 · 소조불로 불국토을 현현한 듯한 이 천불동은 366년에 락준(樂樽)이라는 스님이 명사산 꼭대기에 천불이 하현하는 것을 보고 석굴을 개착했다고 하며 본격적인 석굴개착은 4세기 후반에 시작하여 7세기(698 A.D)까지 천개 이상의 석굴이 개착되었다고는 하나 신뢰성이 없고 최근 ‘돈황문물 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총492개의 석굴이라 한다. 현재 가장 오래된 유적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엽사이의 석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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