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와 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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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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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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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 동불(東佛)과 서불(西佛)

원효와 퇴계

                 박성배 : 철학박사, 뉴욕 주립대 종교학과 교수, 전남대학 철학과 교환교수

  1] 두 성자 · 두 얼굴 · 두 시대

  한국이 낳은 가장 존경할만한 성자들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불교의 원효와 유교의 퇴계를 들 것이다. 그러나 원효와 퇴계는 매우 대조적인 전혀 다른 타입의 성자들이다.

원효가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한 불교의 파계승이라는 특징을 지녔다면 퇴계는 지체높은 조선조 중엽의 대표적인 유교선비였다.

  원효가 안 가는 곳 없고, 안 할 짓 없는 세속주의자 이었다면 퇴계는 가야할 곳과 가서는 안 될 곳이 분명하며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항상 뚜렷한 이른바 엄격한 도덕군자였다. 그래서 퇴계는 항상 세상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분이었고, 반면에 원효는 곧잘 세상의 빈축과 시비의 대상이 되었었다. 이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의 두 성자는 여러 가지 점에서 재미있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원효와 퇴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똑바로 이해해야 한다. 원효는 617년에 태어나 686년에 세상을 떠났다.

  신라가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국을 통일한 것은 원효의 나이 51세인 668년의 일이다. 말하자면 원효는 일생을 혼란과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산 사람이었다.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밤낮 전쟁 아니면 긴장의 연속이었고 통일이 된 뒤에는 지난날의 원수들과 한 나라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갈구하는 것은 평화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원효의 평화이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가지 행동이 나온다.

  2] 원효의 평화이론의 특징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싸움에 지친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우선 싸움을 그만 중지하자는 것이다.

  시비를 가리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시비를 가리려고 할 때 싸움은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원효의 평화이론은 사람들이 시비를 그만 두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친다.

  여기서 결국 나타난 것은 무지다. 인간의 무지이다. 이것이 평화를 가로막는 가장 근원적인 장애요소다. 그러나 우리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원효가 말하는 무지는 요즈음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지적인 무지가 아니다. 자기하고 입장이 다른 남을 용납하지 못하는 무지, 사람됨이 편협하고 옹졸한 인간적인 무지를 말한다.

  그러므로 모르는 것 없는 유식한 사람이 오히려 무지할 수도 있다. 지적인 무지는 지식을 많이 얻어 몰아낼 수 있지만 인간적인 무지는 무엇으로 몰아낼 것인가? 마음이 커져야 한다. 도량이 넓어져야 한다. 남을 용납할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남을 용납한다는 말은 손해를 본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이 말은 자기 스스로 자기를 죽이는 자기 희생을 의미한다.

  사람들이 남을 죽이려 할 때 싸움이 벌어지고, 스스로 자기를 죽일 수 있을 때 평화가 이루어진다. 또한 남을 용납한다는 말은 남 속에서 자기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속에서 남을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과 나를 함께 볼 때 나와 남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벽이 무너진다.

  원효는 불교인이었다. 불교인의 지상목표는 생과 사를 모두 함께 뛰어 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막힘이 없어야 한다. 모든 것에 걸림이 없어야 한다. 이리하여 원효의 평화이론은 그의 사람됨과 세상 사는 투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된다.

  3] 무애인(無碍人)의 평화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1206~1289)은 원효를 아무데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라 평하면서 그의 무애자재한 가지가지의 기행과 이적을 소개하고 있다.

  한 번은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누군가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하늘 받칠 기둥을 찍어 내겠다.”는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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