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지리(智異)이고 무엇이 법계(法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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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지리(智異)이고 무엇이 법계(法界)인가?
  • 관리자
  • 승인 2008.10.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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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여행 / 천왕봉을 울리는 절, 지리산 법계사

모성(母性)의 산, 지리산 법계사에 오른다. 해발 1,450m. 부성(父性)의 산 태백산 망경사(1,470m)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솟아 있는 절이다.

남쪽 하늘 아래 두 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절집을 찾아가며 나는 마음속으로 내 삶의 우선순위를 생각해본다. 내 삶의 첫 번째 순서는 무엇일까? 내 삶의 첫 번째 초식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으로 내 강호의 삶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이끌까? 호걸이 되어 천하를 주유하며 살기엔 내공이 턱없이 딸리고, 그렇다고 한 곳에 정주해 처자식과 더불어 알콩달콩 살기엔 살(煞)이 너무 강한 나는 과연 어떤 초식으로 내 삶의 우듬지를 삼아야 할지, 괜히 바쁘고 분주하게 세월만 죽이고 사는 내가 때론 가엾고 안쓰럽다.

그래도 한 가지 위안의 말씀은 있다. ‘무시가시무시진(無是假時無是眞)’이라. ‘가짜가 없으면 진짜도 없다.’는 말이다. 1970년대 탄허 선사와 함께 계룡산 자광사에 머물며 강호를 주물럭거리던 걸물 해운(海雲) 도사의 칠언절구다. 지금까지 내 삶이 아무리 가짜의 삶이었어도 마지막 한 방의 진짜 삶을 홈런으로 날리기 위해 번번이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고 때로는 병살타도 쳤노라고. 어제까지의 나에게 병고의 아픔이 없었더라면 오늘 이렇게 땀 뻘뻘 흘리며 모성의 산을 가슴으로 부비고 오르는 기쁨과 행복도 없었으리라고.

군불과 목침에 가라앉는 고뇌의 말씀들

사슴 앞다리처럼 맨들맨들한 노각나무 숲을 지나 외로 난 산죽(山竹) 오솔길을 네 시간째 오르자 떡 벌어진 떡버들처럼 천왕봉(해발1,915m)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젖가슴께 반달가슴곰의 가슴반달 무늬처럼 법계사 일주문이 나타난다.

지리산 법계사(智異山 法界寺). 섬진강 긴 물줄기와 남해바다 깊고 푸른 물에 삭신을 담그고 있는 산의 뿌리는 하난데 어떻게 지혜의 경지가 다르고, 어디가 법의 경계란 말인가. 관해(觀海) 주지 스님의 배려로 이글이글 장작불을 매긴 구들장 방에 목침을 베고 누워 노곤한 색신을 지지다보니 이곳 산정까지 짊어지고 올라왔던 온갖 고뇌의 말씀들이 방안의 훈기처럼 정정하게 가라앉는다. 이것이 바로 성(聖)과 욕(欲)의 지리(智異)이고 승(僧)과 속(俗)의 법계가 아니겠는가. 내 마음의 천왕봉이 아니겠는가.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緣起) 조사에 의해 창건된 법계사는 굴곡 많은 우리네 인생사처럼 뼈아픈 내력을 갖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병화(兵火)로 절 전체가 소실되는 아픔을 세 번이나 겪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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