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차나 한 잔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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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차나 한 잔 하십시다
  • 관리자
  • 승인 2008.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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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 스님이 들려주는 절집 이야기 6 / 차담(茶談)
▲ 차는 나와 사람들 사이에 길을 놓아준 징검다리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 차가 없으면 아주 심심할 것 같다. 말을 조리있게 하는 것도 아니고 수행 내용도 변변찮은데, 차만 있으면 누구든 만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맑은 차 한 잔으로 그저 족하다.

2000년 봄이었다. 백양사 운문암에서 동안거 해제를 하고 미황사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자고 난 아침이었다. 아랫마을 사는 노보살님이 밥을 해주러 올라와서는 “오메 시님 오셨소! 그나저나 스님 축하하요.” 한다. “축하는 무슨 축하요?” 궁금해서 물으니, 주지 현공 스님이 어제 떠나면서 “‘인자 금강 스님 보고 주지스님이라 하시오’ 했당께요.” 하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아득해졌다.

지난 겨울 선방에서 유달리 공부가 잘 되어 ‘이왕 시작한 공부 뿌리를 뽑으리라’ 마음 먹은 참이었다. 내친 김에 옷가지 몇 개 챙겨 떠나려고 들른 길인데 발목이 잡힌 꼴이 되었다. 그때부터 망연히 세심당(洗心堂) 차실에 앉아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주지를 맡을 것인가, 말 것인가.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이렇게 지극한 마음이 일어나 공부를 한단 말인가. 주지를 맡는다는 건 이번 생에는 지극한 공부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10년 동안 걸망 풀어 놓고 자유롭게 다녔으니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주지를 맡긴 맡아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답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렇게 등 떠밀리듯 주지가 되었다. 혼자 차를 마시면 주지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것 같아 보여,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차나 한 잔 하십시다.” 하며 붙들고 차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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