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인으로 대해주시며 공부만 하게 해주셨던 스승
상태바
공부인으로 대해주시며 공부만 하게 해주셨던 스승
  • 관리자
  • 승인 2008.06.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흠모 (欽慕) / 월산 스님의 제자 종우 스님

경주에 들어서니 꽃들의 향연이 눈부시다. 작은 바람에도 화사사 꽃잎을 날리며 지어보이는 봄의 미소가 마음을 흔든다. 아득한 옛날에는 부처님이 삼매에 든 것을 찬탄하며 환희의 꽃비가 내렸다는데, 혹 지금도 어느 눈밝은 선객이 삼매에 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불국사 선원으로 향했다.

벚꽃, 진달래, 개나리, 영산홍, 명자꽃 등 그 고운 손길을 따라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선원은 일순 왁자한 소음이 사라진 것처럼 조용한 풍경으로 서 있었다. 불국사 선원장 종우 스님은 이곳에 이르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생사의 열병을 앓으면서 20대 황금 같은 시간을 다 보내고 그 마지막 길에서 쓰러지듯 몸과 마음을 내려놓은 곳이 바로 이 자리였다고 한다.

한 두 달 푹 쉬었다 가게

“스물여덟이었으니까, 1976년 가을 무렵이었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한 달여를 걸어다녔습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불국사 선원이었고, 바로 이 방에서 월산 스님을 뵈었습니다. 그때 저는 유마경에 대해 물었는데, 스님은 일체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는 ‘몸이 아픈 것 같으니 한두 달 푹 쉬었다 가게.’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그 순간 마음이 내려놓아지더군요.”

종우 스님은 그렇게 꿈결처럼 월산 스님을 친견하고는 내쳐 일주일 동안 쓰러져 잠만 잤다고 한다. 그리고 3년 뒤 월산 스님을 은사로 모시기 위해 다시 이 길을 걸어왔다. 그때는 걸인의 모습이 아닌, 출가 수행자의 당당한 걸음이었을 것이다.

사실 처음에 전화로 찾아뵙겠노라고 했을 때 종우 스님은 망설였다. 무엇보다 결제 중이었고 외부에 얼굴을 비추는 것도 편치 않았던 듯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었던 것은 스님에게 있어 은사스님과의 인연이 그만큼 귀하고 지중한 까닭일 것이다.

염화실 안쪽으로 들어서자 방안 안쪽에 걸려있는 월산 큰스님의 영정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불쑥 튀어나온 말이 외람되게도 ‘참 잘 생기셨습니다’ 하는 말이었다. 눈으로 차별하고 분별하던 습성을 어떻게 숨길까. 다행히도 스님이 그 말을 받아주었다.

“참 수려하셨죠. 그래서 옛날에 대중스님들이 탁발을 나가시면, 다른 스님은 몰라도 우리 스님 발우는 항상 공양물로 넘쳤다고 합니다. 그저 뵙기만 해도 절로 환희심이 날 정도로 정말 멋지셨거든요,”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