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베 홋이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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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 홋이불의 추억
  • 관리자
  • 승인 2008.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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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심 연작소설

올이 상큼하게 선 삼베 홋이불을 바라보고 있던 강여사는 어린시절의 추억속으로 잠겨 들었다.

강여사가 여섯살쯤 되었을 때다.

어느 여름날 아침 할아버지는 고운 삼베 두필을 앞에 놓으시곤 “이건 우리 영주 혼수감이다”라고 하셨다.

여섯살 밖에 안된 손녀를 위해 혼수감을 장만하시다니,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스운 일이지만 아무튼 그때 할아버지는 고운 삼베 두필을 혼수감으로 장만해 놓으셨다. 지극한 사랑이 그런 성급한 행동을 하게 하셨는가 보다.

나중에 어머니한테 들어서 안 얘기지만 그때 할아버지가 장만한 삼베는 손서(孫壻)의 도포감과 여름용 주이적삼감이었다고 한다.

강여사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강원도 산골마을은 삼베고장이었다. 여름만 되면 장대만큼 자란 삼나무(나무라는 말이 해당되는지는 모르지만)때문에 초가집 지붕이 파묻쳤다. 그러니까 온동네가 여름이면 삼나무 물결속에 잠긴 셈이었다. 그만큼 삼나무는 키가 컸고 동네 사람들은 너나 할 것없이 모두 밭에 삼을 갈아서 삼베길쌈을 했었다.

삼밭은 여름내내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었다.

아이들이 삼밭에 들어가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면 삼밭에 못들어가게 야단을 쳤지만 아이들은 매일매일 어른들 몰래 삼밭에 들어가 한나절씩 놀곤 했다.

삼밭은 그늘이 지기 때문인지 아니면 삼나무의 특수한 성분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유달리 서늘했다. 지금 생각해도 에어콘을 틀어놓은 것만큼 서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이런 삼밭에 몰래 들어가 삼잎을 따 머리땋듯 꼬기도 하고 누가 먼저 잎을 따내나 가위 바위 보를 하기도 하고, 또 삼나무 잎으로 김치를 담가 놓고 소꿉놀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놀이보다도 가장 재미있고 신났던 것은 새집을 뒤지는 것이었다.

삼밭에는 새들이 둥지를 쳐놓고 알도 낳고 새끼도 까고 했는데 둥지속에 들어있는 새알을 몰래 훔치거나 새끼를 잡는 건 무엇보다도 신이났다.

그렇게 신이 나서 훔친 새알과 잡은 새끼를 가지고 무엇을 했는지는 확실하게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는 걸로 봐서는 특별히 무엇을 했다기보다 그냥 아무데나 버렸던게 아닌가 싶다.

지금 생각하면 끔찍한 살생이었는데 그런 살생을 놀이로 삼고 있었으니 인간의 속성속에는 잔인성이 깊숙이 뿌리 내려져 있는가 보다.

아무튼 강여사도 어린 시절엔 삼밭에 들어가 소꼽놀이도 하고 새둥지도 뒤지고 하면서 행복하게 놀았다

그 때를 돌이켜 볼 때마다 행복감에 젖을 수 있는 것은 놀이 그 자체보다도 할아버지에 대한 애정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는 강여사에게 있어선 행복 그 자체였다. 할아버지와 관계지어진 추억은 모든게 행복하다.

그물을 들고 냇가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것도, 잡은 고기를 가시를 발려가며 먹여주시던 것도, 제사를 지내고 오실 때면 널따란 도포소매 속에 꽃증편 몇조각을 넣어가지고 오시던 것도, 할아버지가 날밤을 씹어서 입에 넣어주시면 제비입처럼 입을 쪽쪽 벌리며 받아먹던것도.... 생각하면 어느것 하나 행복하지 않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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