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야식과 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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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야식과 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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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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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전호>에서 아라야식의 자상(自相)인 능장(能藏), 소장(所藏), 집장(執藏)의 뜻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집장의 뜻은 아라야식을 망식(忘識)으로써 윤회하도록 만드는데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말나식과의 관계로서 말나식이 집착심을 내지 않았다면 삼계와 육도의 고해에 윤회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라야식과 말나식과의 집장의(執藏義)는 매우 깊은 뜻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잘 알아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나식이 아라야식에 대하여 왜 집착심을 야기하게 되었는가. 이는 매우 부사의한 경지이기 때문에 「이것이다」라고 어떤 물건을 내놓듯이 보여 줄 수는 없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역대 학자들은 이를 비유로써 설명하고 또 그 실상을 알려 주려고 노력하여 왔다. 그러한 비유를 여기에 소개하여 집장의 뜻을 이해하는데 다소나마 보탬이 되고자 한다. 본래 아라야식의 체성은 인간의 본성으로서 아공과 법공의 진리를 지니고 있었다.

아공이란 본래의 자아는 공한 진리의 위에 정립되어 있음을 뜻한다. 공한 진리는 곧 진리의 실성(實性)을 뜻하며 그 진리의 실성은 아무런 집착될 여지가 없는 중도적 존재이다. 있는 듯 하면서 없고 없는 듯 하면서도 항상 있는 것이다. 진공묘유의 원리 위에 존재하는 것이 마음의 본성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실성은 항상 무아의 진리이며 나라고 집착할 수 없는 공한 이치가 곧 아공의 진리이다.

 

안에도 공하고 밖에도 공하며 안과 밖이 동시에 공한 진리를 항상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라야식의 실성이다. 이와 같이 아라야식은 공한 진리에 의하여 대원경지(大圓鏡智)의 부사의한 신통력을 항상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원경지의 진리를 착각하여 고정된 자아의 실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말나식이 아집이다.

다음 아공과 더불어 아라야식의 자체의 법체도 공한 것이다. 아라야식의 자체는 여러가지 인연의 화합으로서 겉으로 보기에는 고정적인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공한 이치에 의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그 밖의 모든 삼라만상도 공한 진리 위에 개체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법공의 논리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하등의 집착할 까닭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범부들은 아집과 더불어 법에 대한 집착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불교에서는 만법이 공한 이치를 설명하고 증명해 주기 위하여 사물의 바탕은 일미진(一微塵)이라는 비유를 많이 든다. 즉 미진은 무형의 존재이면서 유형의 사물을 형성하는 본질이다. 왜냐면 미진은 극소의 존재이므로 육안으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개체로 형성되기 이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진이 하나하나가 인연이 되어 모이면 크고 작은 유형의 사물로 나타나게 된다.

또 그 사물이 인연이 다 되어 없어지면 다시 미진의 세계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미진과 사물은 서로 불가 분리한 관계에 있으며 미진을 떠난 사물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며 무와 유가 공존한 것이 현재의 사물인 것이다.

그러나 보통 중생들은 그 본질을 망각하고 형상이 있는 겉모습만을 보고 마치 실체가 고정되어 있는 것처럼 사량하고 분별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본래 사물은 모든 분별과 이원적인 것을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내심의 망념이 싹터 그 실성의 진리를 망각하고 겉모습만 보고 실체가 있는 것으로 착각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면 큰 거울 속의 광명에 황홀하고 또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착각하여 자기 모습의 그림자가 진실한 자기인 줄로 알고 그에 집착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아라야식은 본래 대원경지라는 지혜 광명을 갖고 우주의 진리가 그 경지에 이르도록 하는 실성을 지니고 있었는데, 평등성지가 본성인 말라식이 대원경지에 비친 진리를 평등하게 관찰하지 못하고 그 황홀경에 착각하여 차별심을 나타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진리를 망각함을 물론 아집과 법집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집을 없애려면 자아의 본성이 공한 것을 관찰하여 대원경지를 나타내는 실성(實性), 즉 불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또 법집을 없애려면 모든 내외의 법체에 대한 실성을 관찰하여야 하면 사물을 관찰할 때도 일미진의 본성까지 관찰하여야 사물의 전체를 볼 수 있고 또 진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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