枕肱 懸辯大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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枕肱 懸辯大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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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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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인물전

  [1] 젊은 수도자

  현변 스님의 자는 이눌이며 호가 침굉이었다. 그는 나주의 윤씨 문중에서 광해군 8년(1616년)에 태어났다.

  아홉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효심껏 섬겼으나, 우연한 기회에 보광스님을 알게 되어 그로 인해 출가하기에 이르렀다. 보광스님은 서산대사의 제자였던 소요(1562- 1649) 선사의 제자인데, 현변소년을 한번 보고는 불법을 공부할 큰 그릇이 될꺼라고 믿고 출가할 것을 권하였던 것이 그의 출가하게 된 동기가 된 것이다.

  그는 보광 스님을 따라 천봉산 탑암으로 가서 머리를 깎았다. 그로부터 그는 열심히 불교 공부를 하였다. 스님의 심부름과 절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틈틈히 공부에 힘을 썼던 것이다. 그러한 그가 18세 되는 어느날 장작을 패다가 잘못 하여 머리에 상처를 크게 입고 쓰러졌다. 충격이 너무 컸던 그는 정신을 잃고 한참 뒤에야 비로소 깨어났다. 잠시동안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잠시 동안의 죽음에서 깨어난 그는

  『만권의 경전을 독파하여도 한 사람의 장님을 구하지 못한다. 부처님은 먼 곳에 있지 않고 마음이 곧 부처이다.』

  라고 하였다. 그런일이 있고 부터 그는 불경공부 보다 내관(內觀)에 힘을 써서 더욱 수도에 정진하였다.  

  이듬해 그는 송계대사를 따라 복현으로 간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그는 복현의 백련등에 사는 선비인 참의 윤도선을 만났다. 윤참의는 현변이 아직 열아홉살의 꽃다운 나이인데다 미목이 준수하고 인품이 출중해 보이는 어린 스님이라는 데에 호기심이 가기도 하였지만, 몇해 전에 죽은 그의 둘째 아들과 얼굴이 좀 닮았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끌리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향과 속가의 가문 등에 대하여 물어 보았고 그러다가 성이 서로 같은 윤씨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윤참의는 죽은 아들 생각이 더욱 간절하여 현변스님이 마치 자기의 죽은 아들이 되살아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지경이었다. 그러한 윤참의는 현변 스님에게

  『그 나이에 산에서 썩을게 아니라 환속해서 다시 머리를 기르고 내 집에 들어와 내 아들이 되어 함께 사는 것이 어떤가? 죽은 내 아들이 다시 살아온 것 처럼 생각하고 친 자식과 조금도 다름없이 대해 줄 터이니 그렇게 하도록 하라』

  고 하였다. 일시적인 기분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간절한 말이었으므로 현변스님은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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