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45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신왕오천축국전] 5.‘죽음의 여신 깔리의 도시, 캘커타 [신왕오천축국전] 5.‘죽음의 여신 깔리의 도시, 캘커타 모슬림의 도살축제갠지스의 본류를 페리로 건너 방글라데쉬의 수도 다카(Dhaka)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 곳은 성대한 축제 기간이었다. 오토릭샤가 가득 찬 시내는, 그야말로 넋이 나갈 정도의 혼잡경이었는데, 우리는 두 아들이 한국에 산업근로자로 와 있다는 집에 초대받아 머물 수 있었다.아침에 집 근처의 모스크(Mosque)사원에 온 마을 사람들이 새 옷을 입고 줄을 맞추어 경건하게 ‘코란’을 외우며 경건하게 의식을 하는 것이 근사하여 염치 불구하고 카메라를 들이대었지만, 막상 바로 뒤이어서 벌어지는 축제는 감당할 수 없어 집안에 처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차라리 참혹한 ‘살육제(殺戮祭)’에 가까웠다. 대로변과 골목길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집집마다 소를 무더기로 도살하는데, 부자는 김규현 | 호수 : 322 | 2007-09-29 00:00 [신왕오천축국전] 4.대하 드라마의 회향 [신왕오천축국전] 4.대하 드라마의 회향 국경을 넘어 방글라데쉬(Bangladesh)로 동부인도의 중심지인 캘커타는 볼거리도 느낄 것도 많은 곳이지만, 혜초를 잠시 미뤄두고, ‘해동의 나그네’의 발길은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인 방글라데쉬로 향하였다. 특별한 유적이 전혀 없어서 관광객의 발길이 드문 이 모슬림 국가를 꼭 가야만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갠지스가 바다로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이었다.그렇지만 단지 강 하나만을 보자고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어서 그 동안 미루어 오다가, 마침 그 곳을 방문하려는 한 사업가를 만나는 바람에 일정을 바꾸어 같이 국경을 넘게 된 것이었다.캘커타에서 교외선 기차로 3시간 달려 뱅가온(Bangaon) 국경에 도착하여 입국수속을 하면서, 원칙상으로는 우리와 비자 김규현 | 호수 : 321 | 2007-09-29 00:00 [신왕오천축국전] 3.천축국의 첫 도착지, 탐나립티국 [신왕오천축국전] 3.천축국의 첫 도착지, 탐나립티국 동인도의 옛 관문이었던 탐룩(Tamluk)혜초는 한동안 머물며 천축행 준비를 했던, 수마트라 섬의 팔렘방을 떠나 말레이 반도와 수마트라 섬 사이의 말라카 해협을 빠져 나와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붓다의 나라에 도착한다. 그 곳은 바로 벵갈 만의 탐나립티 국이라는 나라였다.해로를 이용하였던 구법승들의 순례기에는 탐나립티국은 빠짐없이 나타난다. 먼저 법현(法顯)은 이 곳에서 2년이나 머물다 사자국(獅子國), 즉 스리랑카를 경유하여 귀국했으며 혜초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의정(義淨)도 역시 이곳에 도착하여, “바다의 입구로서 불법이 성하였는데 이 나라에는 24개의 사원이 있어 승려들이 많이 살고 있다.”라는 기록을 남겼다.또한 왕복 모두 육로로만 다녀서 항로를 이용하지 않았던 현장(玄 김규현 | 호수 : 320 | 2007-09-28 00:00 [신왕오천축국전] 2.광주만을 떠나 천축국으로 [신왕오천축국전] 2.광주만을 떠나 천축국으로 남종선(南宗禪)의 고향, 광주(廣州)‘해동의 나그네’는 혜초 사문처럼 비록 항로를 이용하여 천축까지 갈 수는 없지만 혜초의 뱃길에 대한 현장감만은 맛보고 싶어서 일단은 부두에서 주강(珠江)을 따라 60km 내려가 큰 바다인 남해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홍콩으로 가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오후 배표를 예매해 놓고 남은 시간을 광주에서의 혜초의 체취를 더듬어 보기로 했다. 물론 혜초의 광주에서의 행적에 대하여 직접적인 기록은 없지만 연관되는 자료가 있어서 혜초가 천축행 배를 기다리며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지들은 찾아낼 수 있었다.혜초가 이 곳에 왔었을 8세기 초, 광주만은 당제국의 후광 속에서 만개한 국제적인 항구였다. 세계적인 대국이었던 당의 대외교역로는 ‘해양 실크로드’와 ‘ 김규현 | 호수 : 319 | 2007-09-28 00:00 [신왕오천축국전] 1 .해동의 나그네 되어 길 떠나다 [신왕오천축국전] 1 .해동의 나그네 되어 길 떠나다 개원(開原) 15년(727) 11월 상순 안서(安西)에 이르렀는데 신라 성덕왕 초기, 삼국통일 직후 당나라의 문화를 배우려는 진취적인 기상이 온 나라에 만연하고 있을 때, 가슴 가득 꿈을 품은 홍안의 혜초 사문은 고향, 계림(鷄林)을 떠나 입당구법승(入唐求法僧) 대열에 끼어 대륙으로 향한다. 혜초는 낙양에서 당시 인도의 밀교승으로, 중국 밀교(密敎)의 초조로 꼽히는 금강지(金剛智, 671~741)를 만나는 인연을 맺어 그의 권유에 따라 인도 유학을 결심한다.723(?)년 한겨울, 혜초는 현 홍콩만의 광저우(廣州)에서 무역선을 타고 수마트라 섬을 경유하여 인도 동부 벵갈만 캘커타 근처에 상륙한 다음 갠지스 강 유역의 불교 성적을 시작으로 오천축국(五天竺國)을 순례한 다음 --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확인할 김규현 | 호수 : 318 | 2007-09-28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123끝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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