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왕오천축국전] 1 .해동의 나그네 되어 길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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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왕오천축국전] 1 .해동의 나그네 되어 길 떠나다
  • 김규현
  • 승인 2007.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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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開原) 15년(727) 11월 상순 안서(安西)에 이르렀는데 신라 성덕왕 초기, 삼국통일 직후 당나라의 문화를 배우려는 진취적인 기상이 온 나라에 만연하고 있을 때, 가슴 가득 꿈을 품은 홍안의 혜초 사문은 고향, 계림(鷄林)을 떠나 입당구법승(入唐求法僧) 대열에 끼어 대륙으로 향한다. 혜초는 낙양에서 당시 인도의 밀교승으로, 중국 밀교(密敎)의 초조로 꼽히는 금강지(金剛智, 671~741)를 만나는 인연을 맺어 그의 권유에 따라 인도 유학을 결심한다.

723(?)년 한겨울, 혜초는 현 홍콩만의 광저우(廣州)에서 무역선을 타고 수마트라 섬을 경유하여 인도 동부 벵갈만 캘커타 근처에 상륙한 다음 갠지스 강 유역의 불교 성적을 시작으로 오천축국(五天竺國)을 순례한 다음 --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지만, 처음 목적이었던 나란다(Nalanda)대학에서의 수학을 포기하고-- 귀국 길에 오른다.

혜초는 간다라 지방을 비롯하여 터키까지에 이르는 중동지방과 서역제국을 두루 순례한 다음 파미르(Pamir) 고원을 넘어 타크라마칸 사막을 경유하는, 당시 유일하면서도 일반적인 동·서간 교통로인 실크로드를 따라 727년 11월에 당의 안서도호부(安西都護府)가 있는 쿠차(車)로 돌아와 그의 순례를 마감하였다.

불·보살의 가피력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아시아 대륙을 한 바퀴 돌아오는 장장 오만 리에 달하는 대장정을 끝낸 혜초는 당시의 유행대로 순례기를 집필한다. 바로 『왕오천축국전』 전 3권이다. 그가 직접 보고 들은 인도와 서역제국의 실정을 꼼꼼히 기록하였기에 8세기 초 이 지역의 실정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 당대에도 이미 중요시 되어 일종의 불교용어사전인 혜림(慧琳)의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 85구절의 자구(字句) 해석이 수록되었을 정도였다.

『왕오천축국전』은 이 방면의 대명사로 꼽히는 현장(玄 )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등에 버금가는 세계사적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이지만 아쉽게도 현장, 의정, 법현의 기록이 현재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반면에 우리의 최고(最古)의 이 문화재는 앞뒤가 없는 상태로, 그것도 외국학자의 손에 발견되었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 ‘현존본’은 28cm 폭에 총 길이 3.5m의 한지 두루마리에 1행이 약 30자 227행, 총 합계 약 6천 자 남짓 정도가 쓰여진 부분만이 현재 남아 있다. 상·중·하 3권 분량의 전권 중에서 절반에도 못미치는, 일부분만 전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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