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우도十牛圖] 소는 우리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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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十牛圖] 소는 우리 가족이었다
  • 동명 스님
  • 승인 2024.02.2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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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시 속의 소

어린 시절 나는 소와 함께 살았다. 내 방은 쇠죽을 끓이는 방이었고, 벽을 사이에 두고 소와 나는 이웃했다. 소와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니지만, 소는 그냥 나와 한식구였다. 소가 갑자기 떠나거나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애착하지도 않았고, 소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불편하게만 하지 않으면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럼에도 소가 한식구라는 것은 묘하게 위안이 됐고, 강아지처럼 친하지 않으면서도 소가 내 방 옆에서 숨 쉬고 있다는 것이 든든했다.

아버지는 형에게 매일 쇠꼴을 베어놓으라고 했는데, 형은 그 임무를 충실히 이행했다. 형이 도회지 학교로 진학한 후에 그 임무는 내 차지였으나, 나는 그 임무에 충실하지 않았다. 그래도 쇠죽 쑤는 일은 좋았고, 외양간에서 소의 침대 역할을 하다가 거름이 되어가는 볏짚들을 꺼내서 마당에 너는 일도 곧잘 했다. 아버지가 쟁기질을 할 때면, 아직 길이 덜 든 소를 끌고 길잡이 역할도 했다. 소는 정말 말없이 내가 끄는 대로 나를 따라왔다. 소의 입장에서는 쟁기를 끄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자신보다 조그만 아이가 끄는 대로 따랐다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종의 농기구였다. 소는 쟁기질을 해줬을 뿐만 아니라 써레질을 해줬으며, 수레를 끌어줬고, 볏짚을 깔고 누워 침대로 사용하고는 그것을 거름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농기구로서의 소가 필요 없어지는 농한기가 되면 아버지는 소를 팔고 송아지를 사 왔다. 소와 송아지의 가격 차이만큼 이익을 남긴 것이니 소는 재산증식 수단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산업화되기 이전에는 농업인구가 절대다수였다. 우리 문화가 농사짓는 데 필수적이었던 소와 친숙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일까? 선승들의 선시에도 소가 자주 등장한다. 선의 수행단계를 소와 동자의 관계에 비유해 10단계로 그린 십우도(十牛圖)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십우도와 다른 궤의 소가 등장하는 시도 아주 많다. 선시를 해석하다 보면 자연스레 십우도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글에서는 부러 다른 각도로 살펴보도록 한다.

 

아침에는 시냇가 언덕에서 풀을 먹이고

저녁에는 강가 방둑에서 풀을 먹이네.

지는 꽃이 적은 것에 애석해 하지 않고

다만 향기 좋은 풀을 찾을 뿐이네.

앞 시내 뒤 냇물에 안개비가 자욱하여

대삿갓에 도롱이 걸치니 피리 소리 청량해라.

소를 타고도 6, 7리가 멀기만 하니

송아지 재촉하는 소리가 두 번 세 번 퍼지네.

朝牧澗邊塢 暮牧江上坡 不惜落花少 

但尋芳草多 前溪後溪烟雨橫 篛笠簔衣風笛淸 騎牛遠遠六七里 呼犢時時三兩聲

- 백곡처능(白谷處能, 1617~1680), 「목동의 노래(牧童詞)」 전문

목동은 소에게 풀을 먹이는 임무를 안고 길을 나섰다. 아침에는 시냇가 언덕에서 풀을 먹였는데, 향기 좋은 풀을 찾다 보니 저녁에는 강가 방둑까지 갔다. 저녁이 되자 이제는 집에 갈 시간, 안개비가 자욱해 대삿갓에 도롱이 걸치고 피리 한번 청량하게 불어제끼고 소 잔등에 올라탔다. 소를 타고 가지만 6, 7리는 머나먼 길, 말[馬]이라면 순식간일 수 있지만, 이놈의 소는 도대체 서두르는 법이 없다. 이러 이러, 재촉하는 목동의 목소리가 두 번 세 번 마을을 향해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소와 목동의 모습을 아주 자연스럽게 그린 시다. 백곡선사는 「봄날에 취미 장로에게 보내다(春日寄翠微長老)」라는 시에서도 “제비 돌아오고 매화는 떨어지는데/ 소는 누워 있고 풀은 푸르도다(鷰回梅落後 牛臥草靑時)”라며 비슷한 풍광을 그린다. 남녘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제비와 떨어지는 매화가 대비되는 가운데, 소는 한가하게 누워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푸르러지는 풀이 대조된다. 십우도의 소처럼 이 시들의 소도 한껏 상징화된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향기 좋은 풀을 찾는 소처럼, 이 시의 향기를 느끼면 그것으로 시 감상은 충분하다.

소를 먹이는 이가 동자만이겠는가? 소를 먹이는 노인도 있다.

 

지난해 소 먹이며 언덕에 앉았을 때

개울가 녹음방초 실비가 내렸네

올해는 소고삐 놓고 언덕에 누웠나니

버드나무 그늘 밑 시원한 기운 감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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