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이문재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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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이문재 ‘산수유’
  • 동명 스님
  • 승인 2022.03.29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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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구례 산둥마을 산수유, 나물 뜯는 아낙
구례 산둥마을 산수유, 나물 뜯는 아낙

산수유

어머니, 저기, 늙어, 오신다
바람결 끝 풀어져, 끊어버린 방패연엔 어느새 이끼
情人 떠난 모진 길, 저기 탯줄처럼 풀어져
길을 내 속으로, 당기고 당겨, 묻는데
빛 없는 빛, 산수유꽃

(이문재 시집, ‘마음의 오지’, 문학동네 1999)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
구례 산동마을 산수유

[감상]
산수유꽃을 보고 이문재 시인은 늙은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러고 보면 그렇습니다. 산수유꽃의 그리 화려하지 않은 빛깔도 그렇지만, 산수유나무 줄기의 껍질 벗겨진 거친 피부가 특히 그렇습니다. 게다가 산수유 가지에 방패연이라도 하나 걸려 있으면, 마치 그리움 하나 걸려 있는 것처럼 마음이 아려옵니다.

사랑하는 이 떠난 모진 길, 산수유 늘어선 길은 바로 그렇게 별리의 길처럼 애처롭습니다. 길은 탯줄을 닮았습니다. 뱃속에서 어머니와 나를 이어주던 탯줄, 그 탯줄 같은 길을 따라 어머니는 갔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산수유꽃 희미하게 켠 채로 내 안으로 들어옵니다.

빛 없는 빛, 산수유꽃, 그 나뭇가지에 어머니가 앉아 계십니다.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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