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김형로 ‘나와 나무와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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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김형로 ‘나와 나무와 상처’
  • 동명 스님
  • 승인 2022.06.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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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에 있는 쓰러진 전나무 고목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에 있는 쓰러진 전나무 고목

나와 나무와 상처
_김형로

나무를 자주 바라봅니다
상처 없는 나무는 없으니까요

사라진 가지는 옹이로 박혀 있고
둥치는 패고 균형 안 맞는
늙은 몸피의 나무를 더 자세히 봅니다

내 몸에 이런저런 흔적이 늘어갑니다
나무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큰 나무 곁에 무연히 기대봅니다
수고 많으셨다
잠시 다녀가는 내가 인사합니다

놀랐을 겁니다
엊그제 작은 아이였는데…

당신을 보듬으면
말 없는 위로가 수액처럼 퍼집니다

내 마지막 집은 상처 많은 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김형로 시집 ‘백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 상상인 2021)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에 있는 쓰러진 전나무 고목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에 있는 쓰러진 전나무 고목

[감상]
나무를 자세히 보신 적 있으신지요? 어느 정도 자란 나무 치고 시인의 말대로 상처 없는 나무는 거의 없습니다. 나무에 옹이가 있다면, 그것은 가지가 있었던 흔적입니다. 껍질이 벗겨진 곳은 더욱 두꺼워져서 눈에 띕니다.

시인이 나무를 자주 바라보는 이유는 나무에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 있는 나무는 시인에게 동질감을 안겨줍니다. ‘내 몸’에도 세월이 갈수록 상처의 흔적이 늘어가고 있으니까요.

큰나무 곁에 서면 현자 옆에 선 것처럼 숙연해집니다. 시인은 큰나무에게 인사도 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한때 작은 나무였으나 ‘내가’ 늙고 보니 지금은 아름드리나무가 되었습니다. 
당신을 보듬으니 말 없는 위로가 수액처럼 퍼집니다.

시인은 생각합니다.

“내 마지막 집은 상처 많은 나무였으면 좋겠습니다.”

현자의 특징은 덕이 높고 지혜롭다는 것이지요. 그는 너그럽고 현명합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를 그늘이 넓은 나무처럼 넉넉해지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요?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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