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윤희상 ‘도보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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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말을 걸다] 윤희상 ‘도보승’
  • 동명 스님
  • 승인 2022.01.18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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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출가수행자인 동명 스님의 ‘시가 말을 걸다’를 매주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원문은 다음카페 ‘생활불교전법회’, 네이버 밴드 ‘생활불교’에서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설악산 백담사 수렴동 계곡길
설악산 백담사 수렴동 계곡길

도보승

충청도 여행을 갔을 때
절 마루에서 단정한 옷차림의 한 스님을 만났다
뜻밖에도 오백삼십육 일째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나는 스님에게, 왜 길을 걷고 있느냐고는 물어보지 않았다
언제까지 길을 걷느냐고 물어보았다
스님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스님이 된 지 스물두 해가 되었다고 한다

긴 얘기를 나누었다
마루 아래 머물렀던 햇볕이 마당 한가운데로 가 있다

나와 스님은 헤어지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만나자고 했다

비가 내린다
바람이 분다
눈이 내린다
지금, 한 스님이 길을 걷고 있다

궂은 날이면, 길을 걷고 있는 스님이 더 잘 보인다

(윤희상 시집, ‘머물고 싶다 아니, 사라지고 싶다’, 강 2021)

강진 백련사 동백숲길
강진 백련사 동백숲길

[감상]
길은 두 가지 방법으로 생깁니다. 사람이나 짐승이 다니다 보면 특별히 많이 다닌 곳이 생기게 되고, 그 흔적은 뒤따르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되어 천천히 길로 굳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길을 만드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고속도로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다니다 보니 자연적으로 그 흔적이 표가 나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계획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불교는 ‘길’과 참으로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길에서 태어나셔서 평생 길을 걸으시면서 교화하시다가 길에서 열반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어머니께서 당시의 풍습대로 친정에서 아기를 낳으시려고 길을 가다가 아기를 낳으셨지만, 굳이 길에서 열반하지 않으실 수도 있었습니다. 경전에도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3개월 전에 미리 당신의 반열반을 말씀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일생의 마지막 여정이나마 편히 쉬실 수 있었음에도 부처님께서는 생의 마지막 날까지 길을 걸으셨습니다.

출가자에게 집이 욕망을 모아두는 곳이라면, 길은 욕망을 버리는 곳입니다. 실로 길을 떠나 여행하다 보면 욕심부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압니다. 많은 것을 갖고 있을수록 힘듭니다. 길을 가는 사람은 가지고 있던 것도 보시하거나 버리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길을 지향하신 것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윤희상 시인은 충청도에서 오백삼십육 일째 길을 걷고 계시는 한 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께 왜 길을 걷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물을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길을 걸으셨으니, 후학이 부처님을 따라 하는 것이 무에 이상할 게 있겠습니까?

스님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눈이 내리나, 그저 길을 걸었습니다. 시인은 “궂은 날이면, 길을 걷고 있는 스님이 더 잘 보인다”고 말합니다. 궂은 날이면 걷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유교식 사고방식이라고 할까요? 우리나라의 전통적 사고방식에서는 ‘길’을 약간 부정적으로 보는 면이 있습니다. 길에서 아기를 낳는 것도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진득하게 집에 있지 않고 길에서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 않게 생각했으며, 길에서 잠을 자는 것은 거지들이나 하는 짓이라 생각했으며, 길에서 사체를 집안으로 들여오지도 못하는 풍습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때는 병원에서 치료받다가도 죽을 때가 되면 집으로 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길[道]은 ‘수행’과 동의어이기도 하고, 심지어 ‘진리’와 동의어이기도 합니다. 길에서 유행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길에서 잠을 자는 것은 두타행이라 하여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집을 나서면 곧 길로 나서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를 생각하면 집을 나서서 길을 통해 직장에 가서 일하고 돌아올 때도 길을 통해서 집으로 옵니다. 세상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반드시 길이 필요합니다.

집을 나서서 수행자가 된 이는 필연적으로 길을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출가하고 보니 절도 집이더군요. 절이라는 공간에도 집착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았다”라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에게 집이 얼마나 중요한 안식의 장소인지를 말해주며, 절도 안식의 장소가 되었음을 말해줍니다. 절에 와서 보니 출가수행자도 실제로 절이라는 새로운 집에 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인이 만난 도보승도 출가 20년이 되고 보니 자신도 그렇게 안주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도보여행을 떠났을지도 모릅니다.

출가 직전 쓴 산문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한번 떠올립니다.

“부처님이 그러하셨듯이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길을 갈 것이고, 길에서 꿈을 펼칠 것이며,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리라.”

동명 스님
중앙승가대 비구수행관 관장.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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