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초대석] 법정 스님과 세상 다시 매듭 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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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초대석] 법정 스님과 세상 다시 매듭 묶다
  • 최호승
  • 승인 2021.03.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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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의 향기 불일암 암주 덕조 스님
불일암 암주 덕조 스님.

새벽 2시, 길을 나섰다. 목적지가 멀었고 예정한 시간은 촉박했다. 처음 다비식을 마주했던 스님의 맏상좌와 차담 약속이었다. 또 인연이 닿질 않던 암자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10여 년 전에도 그랬다. 정확히는 2010년 3월 12일, 법정 스님 다비식 전날 송광사로 향했다. 첫 다비식 취재였고, 설렘과 긴장이 교차했다. 

홀린 게 맞다. 어렵게 닿은 시절인연이었다. 피곤함도 잊고 새벽길을 달려 불일암에 도착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불일암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시선은 벌써 법정 스님의 자취를 뒤적였다. 손님을 맞이하던 다실 수류화개실, 스님이 직접 심고 지금은 그 품에 안긴 후박나무, 즐겨 앉았던 ‘빠삐용 의자’, 볕 잘 드는 채마밭, 해우소…. 생각대로 담박했다. 

나무 의자 위에 놓인 방명록에 법정 스님과의 작은 인연과 뒤늦은 방문의 죄송한 마음을 적었다. 그때였다. 따뜻한 볕 아래 한 스님이 잰걸음으로 다가와 눈인사를 건넸다. 

“지금 햇살이 가장 좋아요.” 

스님은 수류화개실의 창을 열고 안으로 들이치는 햇살을 자랑(?)하며 밝게 웃었다. 법정 스님의 첫 번째 상좌, 불일암 암주 덕조 스님이다. 

 

사진. 유동영

 

10년 정진 당부는 선물이자 보상

덕조 스님은 직접 내린 뜨거운 커피와 다과로 허기와 한기를 달래줬다. 1983년 송광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행자 시절 법정 스님을 시봉하고 계를 받았다. 1997년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가 개산하자 주지를 맡았다. ‘주지를 맡지 않는다’는 은사 법정 스님의 원칙에 맏상좌가 12년 동안 절 살림을 도맡은 셈이다. 2009년 훌쩍 불일암으로 내려온 다음 해, 공교롭게도 2010년 입적한 법정 스님은 맏상좌에게 특별한 당부를 남겼다. 

“덕조는 맏상좌로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결제 중에는 제방선원에서, 해제 중에는 불일암에서 10년간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한 후 사제들로부터 맏사형으로 존중을 받으면서 사제들을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

덕조 스님은 13년째 불일암에서 정진 중이었다. 

Q. 법정 스님의 유언에 특별히 맏상좌를 향한 당부가 있었는데 

“큰 보상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나이에 길상사 주지를 맡으면서 나 자신을 살필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정신없이 살았죠. 자신을 향한 갈증을 채우라는 선물이에요. 은사스님께서는 공부든 참선이든 모든 지 10년 이상은 해야 인정하십니다. 사실 10년이라는 기간은 숫자에 불과하지요. 불일암에서 자신을 살펴보라는 메시지입니다. 이곳은 은사스님의 모든 영혼이 담긴 곳입니다. 모든 유산을 남기신 거죠.”

 

Q. 10년 넘게 불일암에서 정진하면서 어떻게 아침을 열고 저녁을 닫았나

“출가수행자의 삶이 특별한 게 있나요? 은사스님께서는 대중이 있으나 없으나 자기질서를 지키라고 하셨어요. 잘 때 자고 공양할 때 공양하고 예불할 때 예불하고 정진할 때 정진하는 것뿐입니다. 자칫 가장 자유로운 시간이라고 여길지 모르나, 자기질서를 놓치면 혼자 정진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리듬대로 살아요. 은사스님께서도 그러셨고, 저도 그렇습니다.”

Q. 법정 스님의 법향이 배인 불일암에서 10년 넘게 정진하면서 스님의 살림살이에 달라진 게 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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