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대 홍제사 첫 삽 뜬 군종교구장 선묵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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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대 홍제사 첫 삽 뜬 군종교구장 선묵 스님
  • 최호승
  • 승인 2021.02.0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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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초대석 | 순례·기도·평화 파종의 전법 수레바퀴 자국은 육바라밀이더라
조계종 군종교구장 선묵 스님.

그 많던 대형버스는 어디로 갔을까? 9년 동안 108개 사찰을 찾아 고속도로를 달렸던 버스는 1만 대가 넘었을 텐데…. 108산사순례기도 회향 후 시작한 4년 5개월의 대장정 ‘53기도도량순례’의 걸음은 어디쯤 갔을까. 코로나19로 여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얼마 전 조계종과 군종교구 숙원 불사인 계룡대 호국 홍제사도 첫 삽을 떴는데 교구장으로서 소회는 어떨까. 1964년 13살에 출가했으니 곧 세수 일흔이 되는 스님은 안녕하신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108 평화보궁 근본도량 수락산 도안사에 오르는 내내 그랬다. 가파른 길인지라 호흡은 거칠어졌고, 물음 역시 숨 가쁘게 일어났다. 절 경내에 올라 수락산 아래 경치를 바라보며 숨을 고르게 했다. 여전히 포대화상처럼 넉넉한 웃음을 보이는 스님이 “오셨나?”라며 푸근한 인사를 건넸다. 수락산 도안사 주지이자 조계종 군종특별교구장 선묵(禪默) 스님이다. 

 

사진. 유동영

 

계룡대 호국 홍제사 조감도.

호국불교 근본도량 홍제사 첫 삽

선묵 스님은 작년 11월 계룡대 영외법당 호국 홍제사를 착공했다. 육해공군 본부가 위치한 계룡대에 법당과 교육연수 시설이 들어서는 대작 불사의 첫 삽을 뜬 셈이다. 조계종 백만원력 결집불사 5개 핵심사업 중 하나가 호국 홍제사 건립이기도 하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널리 중생을 제도하는 도량’을 기원하며 ‘홍제사(弘濟寺)’라고 명명했다. 

계룡대 호국 홍제사는 4만 1,298㎡(1만 2,493평) 대지 위에 들어선다. 대웅보전이 들어서는 ‘법당 영역’과 교육연수 시설이 자리하는 ‘교육관 영역’으로 조성된다. 두말할 필요 없이 법당은 불자들 신행과 수행공간이다. 총 3층으로 사찰음식의 맛과 지혜를 배우는 문화공간인 공양간을 비롯해 다목적홀, 군불교 역사전시실, 어린이 법당이 자리한다. 법당 3층은 홍제사의 중심, 대웅보전이다. 이미 공사를 시작한 교육관은 24개 객실과 1개 지대방으로 구성되며, 군불교 미래를 책임질 군법사들의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진다. 또 템플스테이와 명상 등을 체험하는 전법 공간으로도 활용한다. 

호국 홍제사는 조계종과 군종교구가 공사비 60여억 원을 책임지는 한편, 교육관 불사는 군 예산 50여억 원이 투입되는 대작 불사다. 계룡IC, 계룡역은 물론 계룡 지역 어디에서도 2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만큼 위치도 안성맞춤이다. 군장병 전법의 백년대계를 세웠다는 평가가 빈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Q. 홍제사 불사의 첫 삽을 뜨면서 군장병 포교의 백년대계를 세웠다.

“한국불교가 군포교에 첫발을 내디딘 지 52년이 됐습니다. 1969년 첫 법당 화랑 호국사가 준공된 뒤 현재 육해공군 400여 개 군법당에서 군승 법사들이 군 정신 전력 강화와 미래불교를 이끌 젊은 층 전법에 매진 중입니다. 육해공군 본부가 있는 계룡대에 영외법당인 호국 홍제사가 첫 삽을 뜨게 되어 설레기도 하고, 꼭 원만히 회향해야겠다는 각오도 생깁니다.”

 

Q. 처음 홍제사 계획이 공개되고 실현 가능성의 우려도 있었지만 임기 내 시공을 했다. 고민이 있었다면?

“처음 불사계획을 세울 땐 군포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장소 선정 과정에서 군부대의 미온적인 처리, 충분한 부지 확보에 따른 이웃 종교의 비협조, 코로나19 확산 속 예산 확보 등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라도, 하루라도 빨리 착공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기공식을 했습니다.”

 

Q. 계룡대 홍제사 불사는 교계 안팎에 큰 관심사다. 홍제사 불사가 중요한 이유는 뭔가?

“육해공군 삼군본부가 있는 계룡대는 영내에 법당 호국사가 있습니다. 그동안 30년 넘게 군장병 전법 도량으로 그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왔습니다. 반면 25년 전에 영외법당을 건립한 이웃 종교와 달리 법당이 부대 안에 있어 군장병, 예비역 가족, 지역 불자와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웠습니다. 군장병과 불자, 일반인이 함께하는 전법 도량의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영외법당인 호국 홍제사가 숙원이었던 거죠. 군불교 총본산으로 자리매김할 호국 홍제사 건립은 젊은이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불사로서 한국불교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Q. 완공 후 홍제사에서 펼쳐질 군불교의 미래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군포교의 중심축을 담당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계룡대는 육해공군 삼군본부가 있는 군사도시인 만큼 한국불교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도량이라 할 수 있죠. 요즘 젊은이들은 먹거리나 부모의 종교성향에 따라 종교를 선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의 마음 힐링과 그들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 공동체 놀이 등으로 부처님 법을 만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또 예비역 군불자들에게는 마음의 쉼터, 기도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은사 청담 스님의 전법 원력 

선묵 스님과 홍제사 불사로 물꼬 뜬 인터뷰는 군포교와 원력으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은사스님 이야기로 흘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해, 그러니까 13살 어린 나이에 도선사에서 뵀던 스승이 청담 스님이다. 조계종 종정과 총무원장을 지낸 청담 스님(1902~1971)은 성철 스님과 봉암사 결사 도반이다. 상좌 선묵 스님이 13년 넘게 이어온 순례기도와 전법 원력은 은사스님의 그것과 닮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군포교도 마찬가지다. 스님은 은사스님이 파월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이 도선사로 찾아와 군승 법사의 월남 파송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순간은 물론 은사스님의 군포교 역사를 거의 빠짐없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은사스님의 뜻이 스님에게 오롯이 남아있다.

 

Q. 2017년 7월 군종교구장 취임 당시 은사 청담 스님의 헌신적인 군포교 원력을 잇겠다고 했는데. 

“은사 청담 스님은 군포교에 남다른 관심으로 진력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전방 부대를 찾아 군장병을 위로하고 군승단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죠. 스님은 육군사관학교 화랑 호국사, 28사단 호국 광명사, 해군사관학교 진해 호국사의 터를 잡고 법당 건립을 시작했습니다. 서울 조계사에서 육해공군 사관생도 합동수계식도 거행했고, 군포교가 한국불교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항상 말씀했습니다. 은사스님의 전법 원력이 제가 군포교와 인연을 맺는 동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틈나는 대로 전국 사찰과 신행 단체를 찾아 군불교의 중요성을 알리고 종단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홍제사 불사가 원만히 이뤄지도록 할 생각입니다.”

 

Q. 불교 미래의 초석을 놓는 게 군포교라고 하지만 현실은 열악하다. 군에서도 스마트폰 사용이 가능한 시대다. 법공양 등 문서포교와 단순 법회 등 기존 군포교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활로가 있을까?

“변화의 바람이 군불교에도 불고 있습니다. 군에서는 업무시간 외에 스마트폰 사용과 평일 외출, 주말 외박 자율화를 시범운영 중입니다. 휴식시간과 주말에 맞춰 법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휴식은 스마트폰과 함께하고 주말에는 외출하는 병사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군불교도 변해야 합니다. 일일법문, 온·오프라인 1:1 상담·법담 등을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과 전법 활동 전반에 필요한 여러 행정 시스템을 반영한 군포교 애플리케이션이 생기면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SNS로 장병들과 소통 방법을 찾고 서예, 일러스트, 캘리그라피, 포교영상, 스트리밍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일일법문을 제시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소모임을 만드는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램으로 외출·외박 지역에서 집단 상담이나 법담을 나누는 동아리 운영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홍제사처럼 법당이 부대 밖에 있다면 주말 단기 템플스테이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남다른 전법 원력으로 산사순례를 하며 ‘평화의 불’을 봉안해온 선묵 스님. 
스님은 순례마다 늘 함께했던 백제금동대향로를 본따 제작한 조형물을 쓰다듬으며 회상에 잠겼다.

처음도 중간도 끝도 좋은 전법의 길

선묵 스님은 군불교를 총괄하는 군종교구장으로서 군포교에 대한 끝이 없는 고민을 현실로 만들고 있었다. 십선계 도입도 현장의 고충을 즉각 반영한 조치였다. 매년 전국 군법당에서 평균 10만 명의 군장병이 오계를 수계 받지만, 현실성이 떨어졌다. 군 특성상 음주 등 불가피한 일들이 벌어져 장병들이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혼미하게 하지 않는 불음주계에 인터넷이나 게임 등 중독성을 유발하는 대상까지 포함해야 하는지도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신구의(身口意) 기존 오계에서 구업 관련 계를 4개로 늘렸고, 수계한 장병들에게 생활지침이 되도록 십선계를 고안했다. 실제 십선계에는 △화합하는 마음으로 이간질 않고 칭찬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좋은 말을 하며 △화내지 않고 웃는다 등 다소 추상적인 내용보다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포함했다. 

돌이켜보면 모두 선묵 스님의 전법 원력이다. 어쩌면 출가를 결심한 순간부터, 은사 청담 스님을 만났을 때부터였을지 모른다. 사실 오랜 기간 순례와 기도로 다져온 원력이었다. 108산사순례기도회는 도선사 주지로 재직하던 시절 시작한 9년의 대장정이자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성지순례 신행 프로그램이었다. 매월 5,000여 명, 연인원 54만여 명이 함께했다. 대형버스 1만 1,664대로 817만 3,460km를 달렸다. 334일 농산물 직거래 장터를 열고 30억 원 상당의 농수산물이 각 가정 식탁에 올랐다. 방문 사찰에 기와 27만 장을, 부처님에게 공양미 3,000가마를 올렸다. 108산사순례기도가 남긴 역사다. 회향 뒤 곧바로 53기도도량순례도 이어갔다. 순례에는 전 세계 53개국에서 각각 피워 올린 불을 하나로 합한 ‘UN 평화의 불’과 히말라야에서 자연 발화해 3,000년째 한 번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영원의 불’을 합친 ‘평화의 불’도 봉안했다. 모든 게 군불교 전법의 토양이었다. 그래서 2021년은 선묵 스님에게 특별한 한해다. 4대 교구장으로서 임기 마지막 해이자 또 다른 전법의 길 위에 서기 때문이다. 

 

Q. 군종교구장 소임을 끝낸 후 선묵 스님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나?

“수행자가 수행하고 전법하고 기도하는 것이 기본인데 기본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호국 홍제사 불사를 시작한 만큼 무탈하게 잘 마무리하도록 지원하고 협조할 것입니다. 참 저는 일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많은 일복을 잘 실천하도록 하겠습니다. 군포교에 최선을 다는 일이 처음이자 마지막의 계획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후 선묵 스님과 보궁 2곳을 참배했다. 108산사순례기도 순례를 마친 후 조성한 ‘108 평화보궁’과 그 옆에 나란히 자리한 ‘53 기도순례보궁’이다. 코로나19로 잠시 걸음을 멈췄던 53기도도량순례 중 순례하지 못한 8개 사찰을 스님 홀로 참배했단다. 사찰마다 ‘평화의 불’을 봉안하고 회향한 뒤 ‘108 평화보궁’ 옆에 그 불사를 기록한 ‘53 기도순례보궁’을 조성했다. 스님은 아침마다 도량석을 돌며 이곳을 참배한다. 108산사순례기도 9년, 53기도도량순례 4년 5개월. 장장 13년 5개월이다. 스님은 찾아갔던 도량 이름과 만났던 선지식, 함께 했던 사부대중의 숨결을 고스란히 새긴 두 보궁을 매일 쓰다듬듯 참배한다고. 그때마다 스님은 출가수행자로서 가슴에 늘 새기고 되뇌며 곱씹는 화두 같은 경구를 읊조린다. 

“마음은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것으로, 마음속에 악을 생각하면 바로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서 죄와 고통이 따르는 것이, 수레가 지나간 자리에 바퀴 자국이 생기는 것과 같으며, 마음속으로 선을 생각하게 되면 즉시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며 복과 즐거움이 따르는 것이 형체에 그림자가 따르는 것과 같다.”(『법구경』)

맞다. 선묵 스님의 걸음은 복과 즐거움이 따르는 전법의 발자취다. 순례와 기도 그리고 평화 파종의 전법 수레를 끌고 지나간 스님의 길 위에 난 바퀴 자국은 육바라밀이었다.    

 

*호국 홍제사 불사 동참 안내: 조계종 군종특별교구  060)700-0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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