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미지의 세계로, 더, 더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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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미지의 세계로, 더, 더 열기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1.01.22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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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
이우환과 그 친구들 Ⅱ '빌 비올라(Bill Viola): 조우' 전시 리뷰
이우환, 점으로부터, 1974

이우환 작가와 맥락을 함께하는 작가들을 소개하는 ‘이우환과 그 친구들’의 두 번째 시리즈 <빌 비올라(Bill Viola): 조우> 전시가 부산시립미술관 3층과 ‘이우환 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자신만의 조형 언어로 언어화된 세계를 넘어 미지를 향해 나아가 보기를 제안하는 두 작가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재미있는 기회다. 전시는 2021년 4월 4일까지 계속된다.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더듬더듬, 모르는 길 걷기

정해진 길을 가기는 쉽다. 지도에 나온 대로 충실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누구도 가보지 않은 곳으로 향하는 일은 쉽지 않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에서처럼 캄캄한 허공에서 직접 길을 내가며 지도를 새로 그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텅 빈 캔버스에 선을 그려나가는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회화 시리즈와 유리, 돌 등 이질적인 물질들이 충돌하는 장면을 제시하는 <관계항> 시리즈는 우리를 그러한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반복되는 붓 터치가 이미 알려진 세계라면, 붓 터치들이 일으킨 미세한 파동들로 진동하는 하얀 캔버스는 아직 알지 못하는 세계다. 커다란 자연석과 유리가 충돌한 장면이 인간의 연출이라면, 그 사물들을 둘러싼 공간과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공기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계산하기 어려운 우주적인 차원에 가깝다. 이우환 에세이 모음집 『여백의 예술』에는 프랑스의 한 젊은 비평가가 이우환에게 당혹감을 표했던 일화가 나와 있다. 비평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 조각에서는 돌들이 당신이 하는 얘기를 듣지 않고 멋대로 지껄이기 때문에 보는 사람에게 당혹감을 줍니다.” 이 ‘멋대로’ 움직이는 돌들이 하는 이야기야말로 이우환 작업의 메시지다. 이우환에게 작품은 작가라는 권위자의 말을 드러내기 위한 대용품도, 작가의 자아로 가득 찬 결과물도 아니다. 작품은 미확정적이고 생소한 미지의 것들과의 연결을 시도하고, 아직 알지 못하는 무규정적 세계로 시선을 향하게 하는 징검다리를 자처하는 사물들일 뿐이다. 이 징검다리를 건너 모르는 길로 더듬더듬 걸어가는 법을 우리는 배운다.

 

삶을 응시하는 명상적 시선

‘영상 시인’이라고 불리는 비올라의 작품 역시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에 변형을 가하는 것은 그가 주로 취하는 전략이다. 무언가 강렬한 감정을 겪고 있는 듯 보이는 남녀 5명을 45초간 촬영한 비디오를 15분의 길이로 늘려 보여주는 <놀라움의 5중주(The Quintet of the Astonished)>, 기쁨·슬픔·분노·두려움 네 가지 감정을 연기하는 배우들을 1분간 촬영한 비디오를 81분으로 늘려 보여주는 <아니마(Anima)> 등 그가 만들어낸 극단적 슬로 모션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양적인 시간관념을 재고하게 한다.

분과 초를 다투며 효율성의 노예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간은 절약해야 할 자산이 아닌 자신의 삶을 창조해 나가는 데 있어 중요한 재료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거의 정지된 사진처럼 느껴질 만큼 극도로 느린 화면에서 우리는 평소의 속도대로 시간이 흘렀다면 절대 알아채지 못했을 인물의 미묘한 표정 변화나 움직임을 발견하기도 한다. 기쁨이나 슬픔처럼 감정을 대변하는 언어들이 사실은 얼마나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것인지, 인간의 시간관념이 삶의 복잡성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덮어버리고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시간이란 “우리의 영혼과 세상 내면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춘 인간의 창조물”이라 정의하는 비올라. 그가 창조해낸 전혀 다른 시간의 결을 체험하는 일은 이미 아는 것을 뛰어넘어 미지로 떠나는 여정의 출발점이 되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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