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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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1.02.02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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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제니 홀저(Jenny Holzer) 개인전
생생한 공상을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 리뷰
제니 홀저 | Selection from Truisms: The most profound... (detail) | 2015
Sodalite Blue footstool, 43.2×63.5×40.6cm, Text: Truisms, 1977–79
© 2015 Jenny Holzer, ARS
사진: Joshua White/JW Pictures

우리는 문자를 ‘읽는다’. 읽는 작용으로 내 안에 들어온 문자들은 이미지가 되기도 하고, 냄새나 촉감이 되기도 한다. ‘두근두근’ 네 글자는 소리가 되어 울려 퍼지고, ‘고향’ 두 글자는 따뜻한 방구들에 배를 깔고 누워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 글을 읽을 줄 안다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참 신기한 일이기도 하다. 납작한 종이 위 글자들이 소환해내는 감각들은 시공간의 한계를 초월하니 말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로 전하려 했던 입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문자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밟고 건너갈 수 있는 세계의 자유자재, 스스로 우뚝설 수 없는 평평한 글자들 너머에 있는 법(法) 혹은 도(道)와 같은 것. 제니 홀저도 말한다. 가장 뜻깊은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THE MOST PROFOUND THINGS ARE INEXPRESSIBLE), 그러니 말로 담아낼 수 없는 것들을 눈여겨보자고.

 

사진. 국제갤러리 제공

 

흐르는 문자, 혼란 속의 정직

언어는 줄곧 작가 제니 홀저의 재료였다. 70년대에는 <진부한 문구들(TRUISMS)> 포스터 작품을 밤새도록 맨해튼 거리에 붙이고 다녔고, 80년대에는 ‘권력의 남용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ABUSE OF POWER COMES AS NO SURPRISE)’, ‘내 욕망으로부터 나를 지켜줘(PROTECT ME FROM WHAT I WANT)’ 등의 문구를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선보이며 도시 전광판을 미술의 장소로 둔갑시켰다. 거대한 빌딩이나 자연환경에 프로젝터 빛으로 메시지를 투사했던 <프로젝션(PROJECTION)> 프로젝트를 비롯해 문자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티셔츠가 되었든 자동차가 되었든 가리지 않았던 작가. 이제 그는 대표적인 셀레브리티 미술가가 되었다. (40여 년 전, 그가 맨해튼 곳곳에 붙였던 포스터의 가격은 1,000배 이상 올랐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치 않은 한 가지는 바로 언어와 그것을 전달하는 매개(Medium)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다. 국제갤러리 K3관에 전시된 네 점의 LED 작품에서 텍스트는 흐르고, 멈추고, 반짝이며, 춤을 춘다. 텍스트의 의미도 함께 흐르고, 멈추고, 반짝이며, 춤을 춘다. 말끔하게 정리된 감각들을 실어 나르기만 하던 문자는 절대 정리할 수 없는 감각들을, 흘러넘치는 그 혼란함의 무게를, 정직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LED 작품에 흐르던 선언 ‘자기 혼란은 정직함을 유지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처럼. 상충하는 문장들을 나란히 설치해 신념의 자명함을 우스꽝스럽게 만들곤 했던 그의 이전 작업과도 일맥상통한다. ‘어떤 경우에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지속하는 것이야말로 유익한 일이다’와 같이, 각각 놓고 보면 다 맞는 말 같지만 나란히 놓고 보면 완전히 대립하는 문구들은 서로 충돌하며 언어가 무력해진 자리를 창조해 내곤 했었다. 언어가 ‘언어’ 이기를 멈춘 자리에서 정직함이 피어오르기를 기대하며.

“나는 언어가 시연되는 방식을 구상하기를 좋아한다.

언어를 공간적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언어에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 다양한 결과를 도출하기를 좋아한다.”

-제니 홀저

 

감추면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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