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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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0.11.27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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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부산비엔날레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라세 크로그 묄레르(Lasse Krogh Møller)  |  한편 부산에서 - 책상 위에서의 여행
2020 | 아카이브 기록 사진  |  작품 일부  |  Courtesy of the artist

비엔날레 등 지역 행사에 가면 가장 먼저 해당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가를 보게 된다. 부산비엔날레에서도 그랬다. 부산의 지역성을 비엔날레가 어떻게 담고 있을지가 궁금해 부산비엔날레를 찾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하고도 반나절 꼬박 부산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부산현대미술관, 영도, 부산 원도심 일대를 모두 둘러봤다.

 

| 지역성이라는 이름에 내민 도전장

문자로 그림을 그리고 익숙한 관용구들에 독특한 조형성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작업을 해온 스웨덴 작가 칼 홀름크비스트(Karl HOLMQVIST)는 이번 부산비엔날레에 한글을 이용한 작품을 몇 점 선보였다. 누런 종이 위에서 의미와 소리, 자음과 모음이 모두 따로 노는 장면은 묘한 재미를 줬다. 한글을 모르는 작가가 서툴게 따라 ‘그린’ 한글은 익숙했던 한글을 낯설어 보이게 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흔히 선험적 관념을 상징하는 ‘문자’의 상투성을 아주 단순하지만 명쾌한 방식으로 깨는 그의 작품은, 부지불식간에 있다고 믿게 되는 ‘지역 정체성’이라는 개념에 유쾌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듯 보였다.

도시 공간을 인식하게 하는 건물의 벽과 같은 표면적인 요소들로 도시의 스펙터클을 드러내거나 공간의 본질을 묻는 작업을 해온 박상호 작가 역시 지역 정체성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상기시켰다. 파리하면 에펠탑을 떠올리면서도 에펠탑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그려내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개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한 도시에 대한 이미지는 실제를 정확히 반영하기보다는 고착화되기 마련이다. 그가 차용한 건물의 외피들도 그럴듯하게 만든 것일 뿐 실존하는 건축물을 완벽히 복제하고 있지는 않다. 영화 세트장과 같이 외양은 유사하나 건축적으로 아무런 쓸모가 없는 파사드(건축물의 주된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들. 박상호 작가의 조각들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장소의 실체가 정녕 존재하는지, 속 빈 껍데기만 가지고 지역성을 정의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었다.

 

| 지역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선

코로나로 여행이 어려워진 시대, 부산비엔날레에 초대받은 덴마크 작가 라세 크로그 뮐레르(Lasse Krogh Møller)는 부산으로의 ‘언택트’ 여행을 시도했다. 두 발로 직접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하곤 했던 그가 이번에는 책상 위에서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자신을 대신해 부산을 답사해 줄 사람들을 찾은 그는, ‘대리 탐험가’들의 도움으로 부산 곳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그와 그의 대리 탐험가들이 부산을 보여주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그(들)에게 부산은 맨홀 뚜껑 사이에 껴 납작해진 장갑이고, 영도·송도와 다대포 바다로 가는 길을 그린 작은 약도이며, 누군가 쓰다 버린 칫솔이고, 타다 남은 담배꽁초이다. 몸으로 직접 체험하지 못한 여행이어서 그랬을까. 그(들)의 수집품 목록에 오른 일상적이고 사소하며 잡다한 물건들은 하나같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것들이었다.

권용주 작가는 방수포, 포장 천막, 스티로폼, 인조 식물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쌓아 올린 구조 위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인공폭포를 선보였다. 도록에 실린 인터뷰에서 그는 “삶의 현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임기응변의 생존 에너지”라는 표현으로 작품을 설명했다. 그에게 부산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폭포수, 말 그대로 인공폭포와 같은 생명력을 지닌 삶의 현장이다. 화려하거나 장식적이기보다는 되는대로 물을 뿜어내며 파괴적 생명력을 드러내는 인공폭포는 어둑어둑한 영도 창고 안에서 커다란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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