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나요?
상태바
[상상붓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나요?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0.10.26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 모습.

한 학인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선사는 대답했다. “없다.” 또 다른 학인이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 선사는 대답했다. “있다.” 있다느니, 없다느니 하는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분별상을 참구하게 하는 화두,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이다.

 

| 개를 ‘위한’ 전시

우리는 이제 ‘반려견’이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애완동물’을 ‘반려동물’로 부르자는 제안을 처음 한 사람은 생태학자이자 동물 심리학자인 콘라트 차하리아스 로렌츠(Konrad Zacharias Lorenz) 박사다. 인간이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이용하는 대상이 아닌, 함께 교감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을 담았다. 애완동물의 ‘완(玩)’이 ‘희롱하다’, ‘업신여기다’라는 뜻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반려동물이라는 용어가 그나마 좀 나은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이 과연 ‘개의 입장에서도’ 적합하냐는 문제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공상과학 소설에서처럼 동물과 소통할 방법이 발명되지 않는 이상, ‘개의 입장’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확신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개를 ‘위한’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에 반가웠다. 예술가, 수의사, 조경가, 건축가의 협업을 통해 개를 중심으로 공간과 작품을 구성, 국내외 작가 18명(팀)의 28개 작품을 전시했다. 개를 위한 전시를 표방하는 만큼 반려견도 함께 미술관에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개에 ‘대한’이 아닌 개를 ‘위한’ 전시라니. 인간만을 위해 발명된 미술의 수혜 범위를 동물에까지 확장해 보겠다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포부가 드러난다. 미술 현장의 경향성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사건이다. 유럽·미국 중심으로 형성되어온 미술 제도는 그 안에 내재한 제국·식민주의적 시각에 대해 반성을 시도하거나,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미술 생산을 주목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우리는 개의 시각성(개는 적록색맹이다)을 ‘연구’할 수는 있어도 절대로 ‘체험’할 수는 없다. 따라서 개를 ‘위한’ 전시를 해보겠다는 도전은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패를 실패로 보여주고, 불가능을 불가능으로 보여줌으로써 전시는 새로운 가능성을 잉태한다.

| 실패 1. 푸르고 노란

알지 못하는 대상에 관해 대화하는 것은 가능할까? 김용관 작가는 개와 ‘녹색’에 대한 대화를 시도한다. 앞서 언급했듯, 개는 빨간색과 녹색을 보지 못한다. 우리가 느끼는 녹색의 울창한 숲과 붉게 물든 꽃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푸르고 노란>에서 김용관 작가는 (비록 녹색은 아니지만)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풍성한 꽃다발 하나를 내민다. 파란색과 노란색으로만 이루어진 장미꽃다발이다. 파란색과 노란색을 교차로 배열한 바둑판 같은 이미지를 2배씩 확대하는 애니메이션 <다가서면 보이는>에서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섞으면 녹색이 된다는 원리를 이용해 개에게 녹색을 소개한다. 물론 천천히 다가서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통해 개가 녹색을 알게 되리라는 확신은, 없다. 그러나 인간의 시각언어인 녹색을 개의 시각언어인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번역하려는 태도가 상당히 정중하게 느껴진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 실패 2. 순수한 필연

디즈니 애니메이션 <정글북(Jungle Book, 1967)>은 우리에게도 아주 익숙하다. 벨기에 작가 데이비드 클레어보트(David Claerbout)는 3년 동안 정글북의 모든 프레임을 손으로 다시 그려 완전히 새로운 정글북을 탄생시켰다. 문명에서 떨어져 정글 한가운데 버려진 어린 소년의 이야기를 재생산하기보다는, 춤추고 노래 부르는 동물들이 나오는 서정적이고 희극적인 고전 애니메이션 영화를 ‘동물의 인간화’가 없는 이야기로 바꾸었다. 그 결과 등장하는 동물들은 자신의 종에 따른 행동방식을 보여준다. 노래와 익살스러운 행동으로 수십 년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던 발루(Balloo), 바기라(Bagheera), 카아(Kaa)는 이제 곰과 표범 그리고 뱀으로 돌아왔다. 이 새로운 정글북에서 이전의 흥미진진한 서사는 완전히 사라지고 없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속 스토리텔링 기법은 자연에 인간에게 익숙한 서사구조를 덧씌움으로써 자연을 ‘식민화’하는 전형적인 수단 중 하나였다. 완전히 실패하기를 선택한 애니메이션 속 동물들은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될 기회를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관련기사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