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절] ‘왕이 걷던 길’ 세조길과 복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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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절] ‘왕이 걷던 길’ 세조길과 복천암
  • 최호승
  • 승인 2022.01.12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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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道]은 여러 갈래입니다. 행복을 찾는 길, 즐거움을 좇는 길,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길 등등. 어찌 보면 여행이고 수행이자 순례이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둘러 길 걸으면서 절에 들러보는 여행이자 순례길을 걷습니다. 발이 젖으려면 물가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광미디어가 아름다운 길 찾아 절로 함께 걷습니다.

정조와 이방원 그리고 세조, 길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KBS1 드라마 <태종 이방원> 등 조선시대 사극이 인기다. 정조 이산과 태종 이방원을 둘러싼 이야기가 촘촘하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옷소매 붉은 끝동>의 주연 이준호(정조 이산 역), 이세영(궁녀 성덕임 역) 그리고 주상욱(태종 이방원 역), 김영철(태조 이성계 역) 등 출연 배우들 연기와 연출, 극본의 절묘한 합이 이유 중 하나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세계적인 기록유산에서 발견한 흥미진진함과 국민에게 익숙한 역사에 극적인 요소가 가미된 것도 이유이겠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자신이 선택한 삶을 지키고자 한 궁녀와 사랑보다 나라가 우선이었던 정조의 애절한 궁중 로맨스이고, <태종 이방원>은 고려라는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던 시기에 누구보다 조선 건국에 앞장섰던 리더 이방원의 모습을 새롭게 조명하는 드라마다.

정조 이산은 드라마 <이산>, 영화 <역린> 등 여러 콘텐츠로 재탄생했고, 태종 이방원 역시 드라마 <용의 눈물>, <육룡이 나르샤> 등 수차례 등장한 역사적 인물이다. 반면 한글을 창제한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세종의 아들, 세조는 상대적으로 분량이 부족하다.

영화 <관상>에서 이정재 배우가 연기한 수양대군(훗날 세조)은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수많은 신하를 죽인 피의 군주이면서, 부친 세종대왕의 위업을 계승한 군주라는 독특한 캐릭터다. 세조는 피의 군주로서 씻지 못할 악업을 쌓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피부 질환을 앓았다. 전국의 물 좋다는 곳과 절의 불사를 도왔고, 속리산 복천암의 신미 대사를 스승으로 모셨다. 자존심이 셌지만, 신미 스님에겐 의지했다. 피부병을 고친다는 이유로 속리산 복천암으로 행차, 신미 스님을 만났다. 세조가 오갔을 속리산 복천암 가는 약 8km 남짓 왕복하는 길, 세조길을 걸었다. 

아래 영상은 법주사 세조길 겨울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를 담았습니다. 볼륨을 키우시면 좋습니다.

속세 떠난 이들의 땅, 속리산
세조길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있다. 1970년 3월 국내 6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으로 백두대간의 맥을 잇는 산이 속리산이다. 예부터 속리산은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의 소금강산(小金剛山)이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산세로 유명하다. 9개 봉우리로 이뤄져 구봉산(九峯山)으로도 불렸단다.

신라 시대에는 속리악(俗離岳)이라 이름하고 국가에서 산신 제사를 올릴 정도로 중요한 산이었다고 한다. 구봉산 시절엔 진표 율사가 이곳에 이르자 밭 갈던 소들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는데,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짐승도 알아보는 부처를 몰랐다며 머리카락을 자르고 산으로 들어갔더랬다. 이때부터다. 세속 속(俗), 떠날 리(離)가 이름이 됐다. 속세를 여읜 산, 그래서 속리산(俗離山)이다.

누구나 걷기 편한 세조의 순행길
세조길은 법주사 삼거리에서 시작한다. 조선 7대 임금 세조는 공식 자가용 가마인 대련, 소련, 소여 중 하나를 타고 순행(巡幸,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살피며 돌아다니던 일)했겠다. 시대는 변했다. 2016년 9월 휠체어, 유아차 등을 이용하는 교통약자를 배려한 무장애 탐방로로 개통했으니, 걷기 편한 길이다.

떠날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알고 떨어진 낙엽이 지천이었다. 잔설이 하얀 색감을 입힌 세조길은 길 곁으로 흐르는 계곡이 계절감을 깨웠다. 살얼음 아래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새소리를 곁들이고, 겨울 내음 가득한 바람까지 들이키면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 이 평화로운 마음이 주변으로 확장하는 느낌마저 든다. 걷기명상을 즐기는 틱낫한 스님의 한 말씀에 그대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 축복처럼 찾아왔다.

“우린 너무 빨리 달려왔습니다. 눈앞의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빠르게 왔습니다. 천천히 걸어봅시다. 석양의 아름다움도 맛보고, 꽃 앞에서 걸음을 멈춰봅시다. 지금 바로 이곳에서 삶이 주는 값진 축복을 느껴봅시다. 고요하게 숨 쉬고 걸어 보십시오. 주변의 모든 것이 평화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목욕소
목욕소

겨울, 세조길의 맛
저수지에 다다르자 겨울이 더 확실해졌다. 우연히 같은 길을 걷던 이는 저수지 가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얼어붙은 저수지와 저수지 너머로 보이는 겨울의 속리산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상념 젖은 듯 명상하듯 앉은 그의 그림자가 겨울 볕에 작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 위로 노송들이 긴 그림자를 세조길에 그렸다.

세조가 복천암으로 가던 중 들러서 목욕한 장소, 목욕소에 다다랐다. 유래를 보니 목욕하던 세조에게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 태자가 나타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다”이라고 말했단다. 과연 세조의 피부병은 차도가 있었으니, 해서 이름이 목욕소였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바위 아래 몸을 감추면서 목욕할 공간이 제법 나왔다. 겨울에 세조의 목욕소를 바라보니 소름만 돋았지만, 세조길은 여기서부터 더 맛있다. 가파르게 오르면서 만나는 깊은 계곡과 하늘로 뻗은 노송들, 돌탑 위 나무에 걸린 빨간 새집, 가파른 언덕에 뿌리내리고 쏟아지는 버틴 나무들, 그 위에 앉은 호젓한 복천암…. 모든 게 완벽했다.

세조의 자취를 또 찾을 수 있는 상환암을 가보지 못했다. 「상환암중창비」에 조선 태조가 건국을 앞두고 상환암에서 백일기도를 마치고 뜻을 이뤘고, 세조가 훗날 이곳에서 3일 기도로 선왕을 추모하다 무한한 환희심에 젖었다고 했다. 길상암(吉祥庵)이란 이름을 상환암(上歡庵)으로 바꾼 장본인이 세조였다.

복천암 입구 앞에 놓인 돌탑
복천암 입구 앞에 놓인 돌탑
가파른 길 오른쪽 언덕에 복천암이 앉았다.
가파른 길 오른쪽 언덕에 복천암이 앉았다.
복천암 전경
복천암 전경

세조와 복천암, 신미 스님의 인연
세조는 온양온천으로 요양차 간다는 핑계(?)로 복천암에 있는 스승 신미(信眉, 1405?~1480?) 스님을 만났다. 이곳에서 세조는 신미·학조(學祖)·학열(學悅) 스님 등과 함께 3일 동안 기도했다. 암자 이름이 복천암(福泉庵)이듯, 물이 좋은 곳이었다. 속리산 삼파수(三派水, 三陀水)와 복천(福泉)은 조선시대 내내 좋은 물로 유명했다고 하니, 세조가 선재길로 갔을지 모를 일이지만, 오대산 상원사와 복천암 덕으로 피부병에 차도가 있었을지도….

사실 신미 스님은 세조의 아버지 세종대왕과 인연이 지중(불교 이슈 있수다 ‘대체휴일 한글날과 신미대사)’했다. 신미 스님은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고, 세종대왕은 복천암에 시주도 했다. 복천암은 세종대왕이 원찰로 삼겠다면 중건을 당부했던 암자다. 세종대왕이 승하 전 유언으로 ‘선교도총섭 밀전정법 비지쌍운 우국이세 원융무애 혜각존자(禪敎都摠攝 密傳正法 悲智雙運 祐國利世 圓融無碍 慧覺尊者)’라는 법호를 친히 남겼을 정도다.

아들 수양대군도 마찬가지였다. 훗날 왕 세조가 되어서도 스승이 바로 신미 스님이었다. 세조가 간경도감을 설치하고 불경을 번역하고 간행할 때 신미 스님이 주관했다. 순행 후 세조가 신미 스님에게 남긴 편지를 보면 관계가 명확해진다.

“순행 후 서로 있는 곳이 멀어지니 직접 목소리를 듣고 인사드리는 일도 이제 아득해졌습니다. 나라에 일이 많고 번거로움도 많다보니 제 몸의 조화가 깨지고 일도 늦어집니다. 그렇다고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항상 부처님께 기도를 해주시고 사람을 보내어 자주 안부를 물어주시니 다만 황감할 뿐입니다. 행여 이로 인해 제가 멀리서 수행에 전념하고 계신 스님에게 폐를 끼치고 승가의 화합을 깨뜨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습니다. (…중략…) 금을 보내드리오니 좋은 곳에 쓰시기를 바라며, 불개(佛盖)와 전액(殿額) 그리고 향촉 등 물건을 아울러 받들어 올립니다. 조선국왕”

복천암 곳곳을 둘러보고 참배했다. 건너편 산등에 올라 복천암 전경을 바라보며 세조와 신미, 세종대왕의 인연을 가늠했다. 문득, 풍경소리가 마음에 들어왔다. 세조길의 맛이다.

법주사
법주사
팔상전
팔상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법주사
복천암을 내려왔다. 법주사를 종점으로 잡고 시작한 걷기였으니, 돌아가야 할 때다. 발길을 되돌리며, 오르던 길을 내려가며, 봤던 풍경을 다시 보는 맛도 제법이었다. 어떤 작품을 다시 볼 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에 담았다.

법주사는 호서제일가람(월간 불광 ‘위대한 유산_방구석 산사 순례 법주사·마곡사)이다. 높이만 33m에 이르는 동양 최대 미륵불 입상, 천왕문의 호법신장처럼 버티고 선 27m 높이의 전나무 두 그루, 쌀 40가마니를 부어 밥 짓고 국을 끓였던 철확(철로 된 대형 솥)…. 백미는 국내 유일 5층 목조탑 팔상전이었다. 겨울 오후, 하늘에 걸린 팔상전 풍경과 처마가 하염없이 명상하게 만드는 곳이다. 더구나 미래불인 미륵이 57억 7000만 년 후 속세로 내려와 세 번의 법회[용화삼회(龍華三會)]로 인연 있는 이들을 구원한다는 곳(월간 불광 ’꽃미륵 본래면목 자신의 변화더라‘)이다. 그래서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사과도 베어 물어야 그 맛을 안다고 했다. 아주 이별이지 않고 섭섭하지 않게, 가끔이라도 길 둘러 절 들러 걸어야 맛을 알겠지. 속리산 법주사 세조길을 등 뒤로 물렸다. 속리산에 올라 읊었다는 고운 최치원의 시가 발을 붙든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 하고 산은 세속을 여의지 않는데 세속이 산을 여의려 하는구나.”

세조길 여정
코스 : 법주사 삼거리~세조길 입구~수변데크길~딘풍계곡길~목욕소~세심정~복천암
거리 : 왕복 약 8km
시간 :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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