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절] ‘춤추는 소나무’ 무풍한송로 끝 봄소식 자장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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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절] ‘춤추는 소나무’ 무풍한송로 끝 봄소식 자장매
  • 최호승
  • 승인 2022.02.1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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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道]은 여러 갈래입니다. 행복을 찾는 길, 즐거움을 좇는 길, 나아가 깨달음을 구하는 길 등등. 어찌 보면 여행이고 수행이자 순례이겠습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 둘러 길 걸으면서 절에 들러보는 여행이자 순례길을 걷습니다. 발이 젖으려면 물가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불광미디어가 아름다운 길 찾아 절로 함께 걷습니다.

춤 추는 소나무가 있는 무풍한송로
춤 추는 소나무가 있는 무풍한송로

통도사 자장매와 무풍한송
새벽공기가 차다. 2월 초, 우리나라에 봄이 어디서부터 올까? 영축총림 통도사다. 한반도에 봄이 왔음을 공식적으로 인증한다는 ‘봄의 전령’ 통도사 자장매. 통도사 사중스님이 수화기 너머로 몇 송이 피었다는 말을 전했다. 울산역(통도사)으로 향하는 KTX에 설렘을 실었다.

아침 일찍, 절에 오르는 길에 서면 안다.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 천천히 그러다 갑자기 길을 밝히는 햇볕, 적은 인파…. 길과 온전히 홀로 마주할 수 있어서다. 운 좋으면, 절에 들렀을 때 예불의 기운까지 받을 수 있다. 서둘러 통도사로 향한 이유다.

애초 자장매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후회했다. 지난날, 차로 통도사 코앞까지 이동했었다. 후회했다. 통도사의 자랑이 자장매, 금강계단 등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이곳엔 ‘춤추는 소나무’가 있다. 통도사 매표소를 막 지나면 시작하는 소나무 숲길 초입에서 송수정, 부도까지 이어지는 1.6km 무풍한송로의 송무(松舞)에 빨려 들어갔다.

춤 추는 소나무의 길, 무풍한송로
춤 추는 소나무의 길, 무풍한송로

‘춤추는 소나무’ 길이 되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소나무들이 춤추듯 구불거리는 길’이라는 뜻이다. 덧붙이자면 ‘아름드리 노송들이 춤추듯 구불거리고 항상 푸르름으로 서늘함을 느끼게 하는 길’이다. 맞다. 누군가 화폭에 붓으로 수령 100~200년 초록 소나무들을 휙휙 그어놓은 듯했고, 바람 역시 구불구불한 소나무 피해 구불구불 흐를 것만 같았다.

최근 Mnet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스우파)’, ‘스트릿댄스 걸스 파이터(스걸파)’가 높은 관심을 받았다. 한 몸처럼 움직이는 안무의 칼각과 번뜩이는 아이디어, 댄서들의 신념과 우정 그리고 경쟁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무풍한송로, ‘춤추는 소나무’의 군무(群舞)는 칼각이라는 일사불란함을 넘어 자유자재함 그 자체였다. 제멋대로(?) 하늘로 뻗어 올린 가지와 구불구불한 몸에 자유를 뽐냈다.

무풍한송로의 맛이다. 짙은 솔향은 논외로 하더라도, 넘칠 듯 흘러내리는 소나무 군락이 아찔함을 연출했다. 한겨울에 싱그런 초록을 선사하는 소나무의 서늘함, 겨울 볕이 만든 소나무 그림자, 길 곁을 흐르는 청류동천의 소리…. 시선을 하늘로 향해도, 좌우로 돌려도, 땅으로 내려도 지겨울 게 하나도 없었다.

청류동천으로 기운 노송과 무수한 소나무의 그림자들
청류동천으로 기운 노송과 무수한 소나무의 그림자들
영축총림 방장 성파 스님이 작명한 카페 송수정
영축총림 방장 성파 스님이 작명한 카페 송수정

무풍한송로를 지켜온 소나무에는 비밀(?)이 있었다. 긴 시간 스님들이 보호해왔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전국의 좋은 소나무를 베어가기에 혈안이었다. 통도사도 마찬가지였다. 절체절명의 위기, 구하 스님과 경봉 스님이 지혜를 냈단다. “다 베어갈 거면 통도사 저 안쪽부터 해라.” 영축산 중턱부터 소나무를 베어갔으니, 통도사 입구 소나무는 살아남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소나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지금까지 이어져, 통도사와 양산시의 협력으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셈이다.

무풍한송로는 통도사 8경 중 제1경이다. 2018년엔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길로 꼽혔다. ‘제18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시상식’에서 대상인 ‘생명상’을 받았다. 산림청과 (사)생명의숲국민운동, 유한킴벌리가 주최하며 서류심사와 온라인 시민투표, 현장심사를 거쳐 수여할 정도로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사과를 베어 물어봐야 진짜 맛을 안다는데, 무풍한송로를 걸어보니 수상의 이유를 알 것 같다.

“몸뚱이보다 더한 짐이 없다”라는 무풍한송로 초입의 『법구경』 문구가 맞았다. 마음이 즐거우니 몸도 가벼웠다. 멈춰서고 천천히 걷는 느림의 미학이 가져다준 행복이었다. 어쩌면 “고요보다 더한 즐거움이 없다”라는 『법구경』의 글, 맞다. 홀로 걷는 고요함 속에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즐거움에 번뇌망상이 낄 틈은 없었다. 무풍한송로의 진짜 맛이다. 느리게 걷다 중간쯤에서 만나는 카페는 쉼터다. 영축총림 방장 성파 스님이 ‘무풍한송로를 따라 흐르는 계곡에 근심을 흘려보낸다’라는 뜻으로 지정한 ‘송수정(送愁亭)’이다.

불이문 저 뒤로 보이는 대웅전
불이문 저 뒤로 보이는 대웅전

유네스코 세계유산답다, 통도사
무풍한송로 끝, 하마비(下馬碑, 말에서 내리라는 명문을 새긴 비)가 있다. 옆에는 영축총림대도량(靈鷲叢林大道場)이란 큰 글씨를 새긴 바위가 서 있다.

영축산에 있는 통도사는 총림이다. 산스크리트어 vindhyavana의 번역인 총림은 빈타바나(貧陀婆那)라고 음역해서 단림(壇林)이라고도 한다. 많은 스님이 화합하며 함께 배우기 위해 모인 것을 나무가 우거진 수풀에 비유한 것이다.

요즘에는 스님들의 참선 도량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 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총림이라고 한다. 이 총림의 최고 지도자를 방장(方丈)이라고 하는데, 영축총림 방장 성파 스님은 최근 조계종 법의 상징 종정으로 추대됐다.

동서남북 각면에 다른 편액이 달린 통도사 대웅전, 구룡지가 있는 쪽에서 보이는 적멸보궁 사리탑
동서남북 각면에 다른 편액이 달린 통도사 대웅전, 구룡지가 있는 쪽에서 보이는 적멸보궁 사리탑

부도를 정성스럽게 모신 부도전을 오른쪽에 두고 조금 걸으면 통도사 성보박물관을 지나 통도사로 향했다. 통도사는 율사 자장 스님이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법보종찰 해인사, 승보종찰 송광사와 함께 불보종찰로서 삼보사찰이다. 창건 기본정신은 부처님 사리(舍利)를 봉안한 금강계단(金剛戒壇)에 있다. 계단이란 계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다. 부처님 당시 수계의식 집행을 청하자 부처님이 허락해 기원정사 동남쪽에 단을 세우게 한 데서 비롯됐다. 자장 스님이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세우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지나 금강계단이 있는 대웅전에 다다랐다. 통도사를 대표하는 목조건축물 대웅전은 국보다.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엔 대방광전, 북쪽으로 적멸보궁 편액이 걸린 독특한 전각이다. 금강계단 참배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음력 초하루에서 초삼일, 음력 보름, 지장재일(음력 18일), 관음재일(음력 24일) 그리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문이 열린다.

순간, 온 도량에서 예불이 시작됐다. 대웅전, 관음전, 응진전, 영산전 등 모든 전각에서 나온 목탁소리와 스님들의 염불소리가 도량 전체로 퍼져나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산사, 한국의 승원’으로 지정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천년 넘게 스님들이 예불하고 울력하며 수행하면서 지켜온 도량의 연속성과 역사성을 인정했다는 증거였다.

봄이 오고 있다고 알리는 통도사 자장매
봄이 오고 있다고 알리는 통도사 자장매

“봄이 온다” 통도사 자장매
새벽공기가 찼다, 하지만 한반도 남쪽, 양산의 대도량 통도사에는 봄소식을 알리는 매화가 있다. 자장매다. 옛 스님들 진영 60여 점이 봉안된 특별한 공간 영각(影閣) 앞에 홀로 꼿꼿이 섰다. 수령이 350여 년 된 홍매화, 통도사를 창건한 스님의 이름을 붙인 자장매(慈臧梅)다. 

예부터 선조들은 매화 사랑이 각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봄소식을 하루라도 빨리 찾는 상춘객들이 삼삼오오 다녀갔다. “어머, 벌써 몇 송이 피었네.” “당신이 이쪽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매화를 다 보네요.” “아직 다 안 피었네. 주말에 또 오자고.” 아서라. 조금 일렀다. 곧 터뜨릴 꽃망울이 봄을 기다렸고, 몇 송이는 봄을 부르고 있었다. 통도사 사중스님이 “올해는 좀 늦게 피는 것 같다”라며 달랬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통도사 성보박물관
김양수 작가의 '아, 매화불이다' 전시실 모습
김양수 작가의 '아, 매화불이다' 전시실 모습

아! 매화불이다 展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한국화가 김양수 개인전 ‘아 매화불이다’이 2월 24일까지 열린다. 조심스럽게 전시실에 드는 순간, 불광미디어를 소개하자 반겼다. 김양수 작가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허락을 구하고 전시실 풍경을 찍고, 몇 마디 말씀을 들었다.

1960년 진도에서 태어난 김양수 작가는 동국대 미술학부와 성신여대 대학원을 졸업, 중국 중앙미술학교에서 벽화를 전공한 뒤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자연과 생명에 녹아내린 정신을 한 줄의 맑은 시처럼 화폭에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서 ‘선화(禪畵)’ 작가라는 말도 듣는다.

2018년, 4년 전 고향 진도로 스스로 유배를 보냈다. 그는 여귀산 자락에 ‘고요를 잡는다’라는 마음으로 고요할 적(寂), 잡을 염(拈)에서 글자를 따 적염산방이라는 작업실에서 작품 활동 중이다.

“절에 오면 늘 마음이 편안해져요. 종립대학 동국대에서 미술을 공부하기도 했지만, 종이에 먹이 스미듯 자연스럽게 불교가 내 안에 자리했습니다. 제가 화순 이불재에서 글 쓰시는 형님과도 인연이 깊어요. 정찬주 작가요. 법보종찰 해인사에서 전시는 했고, 이번엔 불보종찰 통도사에서 귀한 인연을 주셨으니, 다음엔 승보종찰 송광사에서 전시하고 싶어요. 삼보사찰에서 전시하는 선연이 주어진다면, 제 생에 아주 큰 의미가 될 것 같아요.”

손님이 찾아왔다. 대화는 짧았지만, 여운이 깊었다. 도록에 작가가 직접 쓴 글처럼 ‘아름다운 인연, 향기로운 만남’이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400호 대작부터 10호 소품 등 매화 그림 30여 점을 선보인다.

통도사 자장매
봄을 부르는 통도사 자장매

통도사에 가시려거든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천 년을 묵어도 자기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치 않으며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 가지는 백 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조선 중기 문신 신흠(申欽, 1566~1628)의 수필집 『야언(野言)』에 수록된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이라는 한시다. 통도사가 왜 영축총림일까, 350년 넘게 봄이면 꽃을 피우는 홍매화는 왜 자장매일까, 무풍한송로의 소나무는 왜 한결같이 푸를까, 자장 스님은 왜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세웠을까, 유네스코는 왜 통도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을까. 일생을 추워도 향을 팔지 않고, 천 번 이지러져도 바탕은 변치 않았고, 백 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나서다. 그래서 자장 스님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금강계단에 봉안한 불보종찰 통도사다. 통도사에 가시려거든, ‘梅一生寒不賣香’ 이 문장 하나 들고 무풍한송로 지나 자장매를 보고 금강계단을 친견하시라. 그나저나 통도사 자장매는 봄을 부르고 있다.

통도사 무풍한송길 여정
코스 : 통도사 매표소 앞 주차장~무풍한송길~부도전
거리 : 왕복 약 3.8km(편도 1.6km)
시간 : 1시간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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