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0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공부하는 도량, 이웃과 함께하는 도량 참 다행이다. 첨단산업전시회나 온갖 상품과 오락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코엑스몰을 비롯해 현대 건축들이 늘어선 도시 속의 도시. 여기는 우리 감각을 온통 압도하는 휘황한 공간이다. 한데, 시골사람 장터 구경하듯 두리번거리다가 혼이 나가기 전에 숨구멍 같은 봉은사를 발견한 사람은 참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자랑해도 무슨 소용이람. 백번 들어도 한 번 본 만하지 못하고, 백 번 보아도 한 번 해본 만하지 못하니, 나는 무얼 보고 무얼 쓸 것인가. 봉은사는 1939년의 화재로 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탔다. 다행히 판전은 화마를 피해서, 대방광불화엄경, 금강경, 유마경 등 경전의 목판들과 ‘판전(板殿)’ 현판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현판이 걸린 판전은 남호 영기스님(1820~1872)이 관리자 | 호수 : 365 | 2007-10-07 00:00 가야불교를 예증하는 화용산 관룡사 흔히 우리는 '한국불교 1,600년'이라고 한다. 이는 고구려 소수림 왕 2년(서기 372년)에 전진(前秦)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때로부터 기산(起算)해서 그렇게 따지지만 일부에서는 불교의 남방전파설을 주장하며 불교의 전파시기를 약 백년 남짓 이르게 잡기도 한다. 즉 고대의 가야를 통해 불교가 전래 되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가야는 불교적인 통치이념에 의해 발생한 국가로 수로와의 왕비가 돌탑과 결정를 싣고, 스님이었던 오라비를 대동하고 들어옴으로 해서 이 땅에 비로소 불교를 전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지리산 칠불암의 창건설화는 이런 가설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수로왕비의 오라비가 칠불암에서 수도하는데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모두 그곳으로 출가하여 해탈했으므로 절을 지어 칠불암이라고 명명했다거나 수로왕과 왕 관리자 | 호수 : 259 | 2007-09-15 00:00 칠갑산 품에 안긴 문화재보고-장곡사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보조 스님은 웅진에서 태어나 설악산 억성사에서 염거 화상에게서 선지를 이어받고 우리나라 선불교의 비조인 도의 스님의 법맥을 이은 분이시다. 신라불교가 화엄사상에 기반을 둔 정토 불교라 한다면 이 보조 스님을 비롯하여 신라 말 중국에 유학을 갔다 돌아온 스님들은 선진적이고 가히 혁명적인 선불교 사상으로 지방호족이었던 왕건이나 궁예, 견훤 등에게 개국의 이념을 제공했다. 선불교의 무애한 기풍과 누구나 본래의 성품을 보면 바로 성불한다는 혁신적인 슬로건은, 지방호족들에게는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렸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중국에서 달마 대사가 양무제의 이해를 얻지 못하고 소림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듯이 신라시대의 선사들도 대 관리자 | 호수 : 244 | 2007-09-13 00:00 [古寺의 향기] 전라남도 나주 금성산 다보사 겨울볕의 따사로움을 좇아 줄곧 달려 온 나주 다보사. 90년 새해의 힘찬 첫 발걸음을 고요함과 맑은 내음으로 더욱 새롭게 다보사는 설레게 한다. 선사시대 때부터 취락을 이루었던 고읍 나주. 나주는 삼한시대 마한에 속한 불미지국으로 백제 초엔 발라국으로 후엔 통의군이라 이름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통일신라 때는 고을 이름을 금산군이라 개칭하고, 고려 태조때는 나주라 이름하였으머 당시 광주를 능가하는 세를 지녀 현종이 거란의 난을 피해 몽진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읍 나주에서 북으로 오리 거리에는 다보사를 안고 있는 금성산이 있다. 이 곳 금성산에는 고려 왕건군의 요새지가 있어 견훤군이 무등산에 진을 치고 서로 대치하였다 한다. 이에 금성 군민들은 양군의 격전이 벌어질 것을 짐작 관리자 | 호수 : 183 | 2007-05-31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12끝끝
기사 (30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공부하는 도량, 이웃과 함께하는 도량 참 다행이다. 첨단산업전시회나 온갖 상품과 오락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코엑스몰을 비롯해 현대 건축들이 늘어선 도시 속의 도시. 여기는 우리 감각을 온통 압도하는 휘황한 공간이다. 한데, 시골사람 장터 구경하듯 두리번거리다가 혼이 나가기 전에 숨구멍 같은 봉은사를 발견한 사람은 참 다행이다. 다행이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자랑해도 무슨 소용이람. 백번 들어도 한 번 본 만하지 못하고, 백 번 보아도 한 번 해본 만하지 못하니, 나는 무얼 보고 무얼 쓸 것인가. 봉은사는 1939년의 화재로 판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탔다. 다행히 판전은 화마를 피해서, 대방광불화엄경, 금강경, 유마경 등 경전의 목판들과 ‘판전(板殿)’ 현판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현판이 걸린 판전은 남호 영기스님(1820~1872)이 관리자 | 호수 : 365 | 2007-10-07 00:00 가야불교를 예증하는 화용산 관룡사 흔히 우리는 '한국불교 1,600년'이라고 한다. 이는 고구려 소수림 왕 2년(서기 372년)에 전진(前秦)에서 불교를 받아들인 때로부터 기산(起算)해서 그렇게 따지지만 일부에서는 불교의 남방전파설을 주장하며 불교의 전파시기를 약 백년 남짓 이르게 잡기도 한다. 즉 고대의 가야를 통해 불교가 전래 되었다는 설이 그것이다. 가야는 불교적인 통치이념에 의해 발생한 국가로 수로와의 왕비가 돌탑과 결정를 싣고, 스님이었던 오라비를 대동하고 들어옴으로 해서 이 땅에 비로소 불교를 전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지리산 칠불암의 창건설화는 이런 가설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수로왕비의 오라비가 칠불암에서 수도하는데 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모두 그곳으로 출가하여 해탈했으므로 절을 지어 칠불암이라고 명명했다거나 수로왕과 왕 관리자 | 호수 : 259 | 2007-09-15 00:00 칠갑산 품에 안긴 문화재보고-장곡사 장곡사는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보조 스님은 웅진에서 태어나 설악산 억성사에서 염거 화상에게서 선지를 이어받고 우리나라 선불교의 비조인 도의 스님의 법맥을 이은 분이시다. 신라불교가 화엄사상에 기반을 둔 정토 불교라 한다면 이 보조 스님을 비롯하여 신라 말 중국에 유학을 갔다 돌아온 스님들은 선진적이고 가히 혁명적인 선불교 사상으로 지방호족이었던 왕건이나 궁예, 견훤 등에게 개국의 이념을 제공했다. 선불교의 무애한 기풍과 누구나 본래의 성품을 보면 바로 성불한다는 혁신적인 슬로건은, 지방호족들에게는 누구나 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렸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중국에서 달마 대사가 양무제의 이해를 얻지 못하고 소림굴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듯이 신라시대의 선사들도 대 관리자 | 호수 : 244 | 2007-09-13 00:00 [古寺의 향기] 전라남도 나주 금성산 다보사 겨울볕의 따사로움을 좇아 줄곧 달려 온 나주 다보사. 90년 새해의 힘찬 첫 발걸음을 고요함과 맑은 내음으로 더욱 새롭게 다보사는 설레게 한다. 선사시대 때부터 취락을 이루었던 고읍 나주. 나주는 삼한시대 마한에 속한 불미지국으로 백제 초엔 발라국으로 후엔 통의군이라 이름한 유서 깊은 고장이다. 통일신라 때는 고을 이름을 금산군이라 개칭하고, 고려 태조때는 나주라 이름하였으머 당시 광주를 능가하는 세를 지녀 현종이 거란의 난을 피해 몽진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읍 나주에서 북으로 오리 거리에는 다보사를 안고 있는 금성산이 있다. 이 곳 금성산에는 고려 왕건군의 요새지가 있어 견훤군이 무등산에 진을 치고 서로 대치하였다 한다. 이에 금성 군민들은 양군의 격전이 벌어질 것을 짐작 관리자 | 호수 : 183 | 2007-05-31 00:00 처음처음이전이전12끝끝